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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l 25. 2018

망각

#029_망각

#망각


"수진아 이 사진 느낌이 좀 이상하지 않아?"

여자친구는 예민하면서도 멋지거나 아름다운 광경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둔감하다. 꽃이나 예쁜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없는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초반, 꽃 싫어한다는 여자들도 사주면 좋아한다는 친구 말만 믿었다가 그리 정색한 얼굴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다.

"작년에 충주호 가서 찍은 사진이네? 그날 좋았지 바람도 시원했고, 웬만해선 기억 못할 텐데 여기 장면은 기억나네"

간혹 여자친구에게 없는 감정을 있는 것처럼 만들려 하기도 하지만, 이번엔 지금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멋지거나 아름답거나 그런 거 없어? 그때 기억 말고 이 사진에서 뭐 떠오르는 느낌 없어?"

"좀 멋지긴 하네, 근데 뭐, 뭐가 이상한데?"

"난 지금 이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아. 넓은 석양, 눈부셔도 쳐다볼 수 있는 정도의 밝기, 유유히 흐르는 강, 바람에 부대끼는 나무 소리 이 일들이 지금 살갗으로 다 느껴지는 것 같아 신기해. 내가 감성적이긴 해도 사진만 보고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야."

빨려 들어간다고 해야 할까? 세면대 물 내려가듯 내 온몸이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이 기분을 여자친구와 나누고 싶지만 역시나 그건 힘든 모양이다.

"야, 에어컨 바람 직방으로 쐬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좀 비켜앉아."

"역시 넌 메말랐어. 예민하긴 엄청 예민하면서 왜 감정은 가물었니?"

예민함도 감정 중 하나 아닌가? 이상하게 엄청 예민하면서도 감정은 극히 제한적인 여자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 같이 사진 한 장을 보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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