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시콜콜 Aug 09. 2018

사치와 가치

#039_갈증

스스로를 다잡지 못하던 시절, 가까스로 찾아낸 구멍은 사치였다. 매장 직원의 환대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친구들의 부러움으로 자존심을 추켜세웠다. 돈으로 세워진 명예가 내 정체성이 된 것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은 오직 그곳에서만 솟구쳤다. 다른 어떤 쾌락도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지 못했다. 


처음 몇 해는 갈증이 해소되는 듯했다. 직원들의 환영으로 그리고 부러움으로부터 말이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갈증의 농도가 짙어지면서부터다. 더 비싼 것을 사도 즐겁지 않고, 친구들의 부러움이 비아냥으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쫒을 수 없는 걸 쫒고 있다는 걸. 한동안 지속됐지만 문제가 내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몇 년 더 걸렸다. 


건담 프라모델을 광적으로 모으는 친구가 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와 나를 동급으로 생각했지만 내 전리품의 가격은 건담 따위에 비할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에 취해 프라모델 수집하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야 이런 거 모으는 게 좋냐?"


"내가 설명해 줄게, 이게 제일 비싼 건데 나쁜 캐릭터이긴 하지만 중요한 역할이라 악역 중에 유일하게 대형 제작됐고 비운의 캐릭터라 팬이 많아. 그 옆에 건 싼 모델인데 케이스까지 제작해서 보관하는 이유는 건담 역사상 제일 오래된 캐릭터 인 데다 프라모델 설계자가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라 그만큼 가치가 있어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전함은 설계 불량으로 잘못 판매된 모델인데, 그때 내가 좀 힘들 때였거든 그래서 교환해 준다는 걸 그냥 보관하고 있는 거야. 여기 있는 거 하나하나 다 의미를 설명할 수 있지만 듣기 힘들 거다. 맥주나 한 캔 하고 자자."


친구는 모델 하나하나 의미가 명확했고, 소유해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집이 아니면서도 소유해야 할 명분이 있던 것이다. 나는 그랬던가? 시계를 소유함으로써, 차를 소유함으로써 내 갈증이 채워졌던가? 값싼 시계를 소중히 다뤄본 적 있던가? 아니다, 분명 아니다. 나는 그저 비싼 것들을 살 수 있다는 우쭐함으로 나 자신을 만들어 왔을 뿐 내 물건들에 애정을 쏟아 본 적이 없다. 오직 그것을 사기 위한 행동 그리고 그것을 살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욕망했고, 그런 욕망은 물건의 수집과 동시에 또 다른 더 비싼 물건으로의 욕망으로 전이됐다. 쥘 수도 없고 영원히 가질 수도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끝없이 갈증을 느껴왔던 것이다.


나는 사치하고 있었다. 내 행위에는 어떤 가치도 없던 것이다. 왜 비싼 시계를 사야 하는지. 왜 이 비싼 스포츠카를 사야 하는지 물음을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값비싼 물건을 사는 행위로 빠져든 것까지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가질 수 없는 대상임을 알았으면서도 그 순간의 쾌락을 벗어내지 못하고 반복했던 내 모습이다. 


처음부터 가치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달라졌을까? 잘못된 방향이었을 지라도 한동안 내 자존감을 만들어오는데 도움됐기에 어리석다고 생각하진 않겠다. 이제 달라지면 될 테니.





'사진을 쓰다' 콘텐츠는 온라인상 저작권 문제가 없는 사진들을 선별, 사진을 보고 떠 오르는 아이디어를 글로 적어내는 콘텐츠입니다. 산문, 에세이, 소설, 시 등 글로 표현된다면 어떤 방법이든 제한되지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