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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Aug 21. 2018

그는 즐거움을 만들어 낸다

#045_즐거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음속 작은 골방을 자처했던 나. 벗어나려던 발버둥은 더 짙은 어둠만 가져왔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흑색의 가두리에 갇혀있겠지. 그 덕분이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쇼핑이나 여행 따위의 것들이 주는 즐거움과 다른 생동감을 준다.


"자기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즐거워?"


"응? 난 따분한 건 질색이야. 즐거운 게 좋다고."


논점을 비껴가고 있지만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기 보단 이런 질문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진지한 건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똑바로 대답해! 또 어디 딴 데 보는 거야, 나 보고 얘기해 나쁜 놈아!"


표현하기 나름이던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던가? 남자 친구에 다소 거칠게 표현하는데, 그런 내 모습을 꽤나 귀여워한다. 


"서방님한테 나쁜 놈이라니! 혼나야겠어!"


"아앗, 다가오지 마, 더워"


난 땀이 많은 편이라 여름엔 붙어 다니는 게 싫다. 웬만하면 손도 잡기 싫지만 자꾸 삐쳐서 어쩔 수 없다. 


"아, 더워 더워! 고만 걷고 어디 들어가자 남친 놈아."


"어쭈, 또 대드네 쪼끄만 게. 혼나 볼래?"


도망치듯 카페로 들어왔다. 빨리 진정시키고 싶어 묻지도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가끔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할 때가 있는데 그는 이럴 때면 이런저런 시비를 건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그러기도 한다. 


"이봐, 왜 당신 마음대로 주문하는 거야! 우리 아직 별로 안 친해."


"누나가 주는 대로 먹으면 된단다."


"누나라니? 언니, 나 여잔데요. 남자는 이렇게 이쁘게 생기지 않았어요."


"어후 드러, 하지 마"


얼굴이 하얀 그는 대학시절 외모 비교대상이 여자였다고 한다. 못 미더울 얘기지만 과거 사진을 보니 정말 하얗긴 했다. 


갑자기 낯빛을 바꾼 남자 친구가 내 눈을 응시하며 질문한다.


"너 처음 봤을 때 얼굴은 이뻤는데 느낌이 정말 어두웠어. 이런저런 취미도 많이 가지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고 했었잖아? 그랬는데도 왜 그렇게 어두웠는지 알아?"


"어, 뭐야 갑자기 진지한데? 뭔데 말해봐."


"사실은, 내가 저주했거든. 나랑 사귈 여자 나 만나기 전에는 절대 행복하지 말라고."


"이런 악마를 봤나 거짓말쟁이한테 또 속았네."


"속은 당신이 문제지요."


"에라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자마자 벌컥벌컥 마신다. 더위를 몰아내고 싶은 이유지만 남자 친구의 장난 때문에 마시는 척 눈을 흘기며 마신다.


"답답합니까?" 


"말 걸지마 구라쟁아."


"나는 웃음 제조기고 자기는 웃음 보니까 웃기만 하면 돼, 터져라!"


옆구리를 찌르며 터져라를 연신 외친다. 


남자 친구는 즐거움을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스스로 즐겁진 못하지만 조금만 웃겨도 잘 웃는다. 어쩌면 그런 면이 우리 둘을 엮었나 보다. 웃음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잘 반응해 주는 사람.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엔 있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 즐거운 일인 줄 알았다. 물론 즐겁긴 해도 그것을 찾는 행위는 끝없는 다른 즐거움을 발견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반복은 무한할 수도 없을뿐더러 반복하는 행위 때문에 지쳐버리기도 한다. 여행도 처음 몇 번이 즐겁지 여러 번 반복되면 의미 없어지니 말이다.


그는 즐거움을 만들어 낸다. 사소한 일도 매력적으로 바꿔 버린다. 이것이야 말로 내게 딱 필요하던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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