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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Aug 24. 2018

그게 가능하겠어요?

#047_정답

"저희는 기존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외관 디자인 변경으로 사용의 편의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모두들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품이 상당히 불편합니다. 영상으로도 불편함이 느껴질 만큼 말입니다. 지금 이 제품이 호주에서 잘 팔리고 있는 것은 문화적 특수성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 수업은 4학년 1, 2학기 내내 들어야 하는 강의로 6학점 짜리 과목인데, 기업이 제시한 문제를 우리의 시선으로 해결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현장 문제를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지난 3년 간 수학, 물리만 공부하던 공대생으로써 이런 답 없는 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김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한학기 어찌어찌 보냈지만 경영 수업인지 마케팅 수업인지 아니면 산업 디자인을 하라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최악의 문제는 최종평가를 김 교수님이 하지 않는 것. 김 교수님을 제외한 3명의 교수가 평가한다. 1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이번 발표 한 번에 점수가 결정되는 것이다. 


"고객 세그먼트부터 다시 분석하였습니다. 현재 기업은 대리석을 사용하는 모든 건물들을 타깃하고 있지만 저희는 대리석을 사용하는 건물 중에서도 수입 자동차를 판매하는 매장을 타깃으로 하였습니다. 기업의 제품이 가질 수 있는 브랜드 요소가 자동차 회사와 매칭 되는 이유인데, 특히 OO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잘 조화됩니다. 따라서 1차 진입시장은 OO사로 결정하였고, 기업 측에서 저희가 요청한 디자인 요소들을 반영해 준다면 OO사에 실제로 제안서를 보내 볼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김 교수님이 사회를 진행한다.


"3조 발표 끝났고요. 질문하실 교수님 질문해 주세요."


정 교수님이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든다. 정교수는 국내에선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받는 프로젝트가 많다. 산속에 숨은 천재라는 말을 많이 듣는 교수다.


"기술적으로 그게 가능하겠어요? 핵심기술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외관 디자인이 바뀌면 사용방법이 바뀌어 문제 생길 것 같은데. 기업에서 이유 없이 디자인을 저렇게 하진 않았을 거란 말이죠. 그 부분이 불편할 것 같다고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됩니다."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 기술적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아 보였고, 기업 측과 사전 미팅에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사전 준비된 정보들을 사용해도 이길 수 없으니 말하기 싫은거다. 아니, 정 교수가 앉은 저 자리에서 나오는 말은 그냥 정답이다.


"아, 네 미쳐 생각 못했습니다. 다시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 교수님은 말이 길어지지 않게 하려고 빠르게 잘라낸다.


"다른 교수님 질문 없으십니까?"


최 교수님이 손을 든다.


"접근 방식이 좋아요. 정교수님이 말씀하신 데로 기술문제는 있겠지만, 3년 내내 수학 계산이나 하던 학생들이 1년 사이에 다른 학문을 습득해서 적용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공대 출신의 약점은 현상을 파악할 때 기술적 관점을 들이대는 거예요. 앞선 1조, 2조 도 그렇지만 3조 역시 기계적 관점을 깨고 인문적 시선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추출해 냈어요. 아주 훌륭하게 평가합니다. 분석하는 능력이나 기술적 수준은 낮지만 전문적인 기술은 사회에서 습득하게 될 거고요. 중요한 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꾸준히 연습하면 분명 좋은 인재가 될 겁니다."


김 교수님이 강조한 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김 교수님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 속행한다.


"박 교수 님은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



모든 발표가 끝나고 심사차 온 교수님들도 돌아갔다. 김 교수님이 교탁으로 올라간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마지막 수업이니 10분 정도만 이야기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공학이 어려운 이유는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순수학문인 수학, 물리는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 일관됩니다. 하지만 공학이 추구하는 방향은 사회가 변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죠. 매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빠르고 정확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내놔야 하는 게 공학입니다. 그래서 기계적 사고관에 빠지면 언제나 효율성을 추구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그 효율성을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기존의 질서로는 불가능합니다. 기존 질서를 깨뜨려야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거예요. 물론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긴 어렵습니다. 어렵더라도 매 순간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교수님은 작년에 임용되어 이번에 처음으로 이 과목을 맡았다. 처음 두 달 수업을 들을 땐 아무것도 이해 못해서 교수가 문제라 생각했다. 한 학기 지나서야 알았다. 교수님이 설명하려는 게 무엇이었는지. 졸업 전 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



"발표 마치겠습니다."


이 부장은 또 딴지를 건다.


"그게 가능하겠어? 검토 더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놈의 검토는 맥락도 없고, 이유도 없다. 딱 봐도 기획안에 문제가 있는데 왜 스스로 찾지 못하냐는 식이다. 자리가 가진 권력에서 나오는 폭력적인 행위다. 여기서 물러서면 한 발 물러서는 것을 꼬투리 잡아 사람의 인성을 타박할 것이 분명하다. 기획안 내에는 자기가 알아먹는 내용이 없을 테니. 


"최 팀장님이 시장조사해 주셨고, 기술팀에서 문제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브랜딩에 도전적인 요소가 있지만 이 정도 시도 없이는 점유율 높이기 어렵습니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진학 후 학업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막상 취업해 보니 기술을 알고 있는 게 상당히 도움된다.


이 부장은 말 그대로 꼰대다. 회사의 발전엔 관심 없고 자신의 자리 유지하기 바쁜 사람이다. 처음 몇 번은 그냥 넘어갔지만 이젠 기싸움에서 밀리는 것도 짜증 난다.


"그 시도한다는 게 말이야. 내가 보기엔 좀 그런데?"


또 말 꼬투리 잡는다. 기획안의 핵심적인 내용엔 관심이 없다. 오직 내가 하는 말 중에 부정적인 단어 고르느라 바쁘다. 


"아, 그런가요? 다른 부분은 검증됐으니 이 부분만 개선하면 되는 거죠? 요즘 트렌드나 문화가 변하고 있는 추세를 봐선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이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부장은 질문이 되돌아올 걸 몰랐는지 허둥댄다.


"아니, 이거 요즘 그거 한 것처럼 하면 되잖아 그렇지 않아?"


이건 도대체 뭔 말인지. 지금까지 고분고분한 직원들이 알아서 했으니 당황할 수밖에.


"요즘 뭐 말씀하시는 거죠?"



...



직장생활 15년, 김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효율성을 넘어서려면 기존의 질서로는 불가능하다는 말. 효율성을 넘어서는 효율성을 찾으려면 기존의 효율성을 파괴해야 한다는 뜻. 지금 그 말이 떠오르는 건 회사생활 15년 차 회사 시스템이 가지는 효율성에 적응해 버린 이유일까. 부하 직원들에게 효율적으로 일하라는 지금 내 모습이 학창 시절 이교수 님이나 10년 전 이 부장이랑 다를게 뭔가. 


효율적이지 않은 이질감이 기존의 효율성을 뛰어넘는 효율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니. 세상은 참 모순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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