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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Sep 21. 2018

30대

#059_자기확신

누구에겐 많은, 다른 누구에겐 아직 어린 나이 서른다섯. 무엇이 된다는 그 서른을 넘은 지 5년째,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케빈, 너는 서른 살 될 때 어땠니?」 케빈은 대기업에서 연구직을 5년 하고, 지금은 부서를 옮겨서 3년째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 「음, 잘 모르겠네. 누군들 잘 알까? 난 아직도 내가 애 같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땠는데? 」 「30살 되면 죽는 줄 알았지, 12시로 초침 넘어갈 때 내가 죽어버릴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2012년 12월 31일 자정이 되기 10분 전부터 모니터 화면에 커다란 시계를 띄우고는 초가 멈추길 10분 동안 빌었다.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멈출 것 같았다.


「너는 내 성격을 잘 알잖아? 아마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언제나 확신에 차있고 내가 말하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던 모습들 말이야. 30살로 들어서면서 그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입사 후 30대 초반까지 일 문제가 발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입 때조차 일 문제로 질타를 받은 적도 없고, 그런데 30이 지나자 그렇게 확신을 가졌던 일들이 정말 확신을 가질 만했는지 의문이 든다. 「요즘 말이야, 예전처럼 확신이 없어 그래서 일처리 할 때마다 고민이 점점 늘어가는 느낌이야.」 케빈은 나와 반대가 되어갔다.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에 더 확신이 채워졌다. 「루카스, 너 고민이 왜 이렇게 많아졌니? 예전엔 과감했잖아? 이제 넌 관리자야 네가 맞고 틀리고 가 중요하지 않아. 팀원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게 고민 많으면 너 자리 유지 못한다.」


20대가 열정이었다면, 30대에 해야 할 일은 자기 합리화인 것 같다. 다만 아직까지 합리화가 보편적 정당성을 끌어내지 못함이 누군가를 설득시킬 힘까지 텅 비게 해버렸다. 케빈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만족한다. 20대엔 세상에 대한 불평도 많았지만 지금은 기계처럼 일 한다. 자신의 생각은 더 이상 없다. 그토록 싫어하던 상사, 부모님의 모습을 본떠 살아가는 것이다. 「케빈, 넌 네가 확신 가지는 것이 정말 네가 만들어낸 생각이라고 보니?」 우리는 어떤 틀에 산다. 갇혔다. 그것을 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지배받는지 모른 채 자신의 인생을 산다고 착각한다. 「이봐, 루카스 또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이게 내 생각이 아니면 누구 생각이라는 거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자기 확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좋은가? 어떤 경험으로 그의 내부가 채워졌는가의 문제겠지. 요즘같이 힘든 세상 어려운 환경에서 목숨 부지한 것은 인정해 줄 만 하나 본 대로 따라 한다고 케빈도 자신의 권력적인 면모를 인지하지 못한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함께이고 싶으면 남고 싫으면 떠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일 수도 있겠다. 나와 동조하는 사람들만 내 테두리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일이다. 과연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의식 중이던 무의식 중이던 거부되었다. 이젠 그렇지 않은 삶을 만들어가야 할 테나, 그러는 누구를 본 적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그것이 아마 가장 큰 혼란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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