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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Sep 26. 2018

"나는 이 정도면 즐거워"

#060_배움

‘새벽 해가 눈 시려요. 밤새 짓던 개구리도 매미도 아침에는 조용하네요. 마당에 싸인 쟁기들은 어떡한데요. 이제는 손잽이가 다 썩어 쓰지도 못하네요. 이번 추석에 애들한테 치우라고 해야겠어요. 영감이 보고십은데 아직은 더 있을라고요. 평생 일만 했으니까 더 쉬어요. 나 가면 귀찮게 할테니까.’


나이 80에 가까워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 방송에서 늦게 글 배운 어르신들 볼 땐 느낌 없었는데 우리 할머니라서 일까 왠지 뭉클하다. “할머니 글 쓰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너무 좋지, 내가 생각하는 거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내 마음을 이렇게 적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다시 할머니의 글을 읽어본다. 내가 쓰는 글이라곤 회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 정도. 내 글과 할머니의 글은 참 많이도 다르다. 분명 같은 한글인데 참 순하고 맑다. 어디에도 어둠이 없다. 내가 쓴 글은 항상 경직되어 있는데 꾸미고, 왜곡하고, 가리고...


“할머니 이렇게 좋으시면 학교에서 더 배우시지 왜 그만하세요?” 너무 즐거워하시기에 더 다니시길 바랬지만 돈이 걱정이셨는지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극구 반대하신다. “아니야, 난 이만하면 됐어, 이 정도면 즐거워.” 매번 같은 말씀이시지만 진심인지는 모를 일이다. 이것도 너무 비꼬는 판단 일런지, 저리 밝은 표정을 보면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시는데.


"우리 손주는 공부 많이 했으니 많이 즐거워야 할 텐데." 누구보다 더 배운건 아니지만 할머니 보단 많이 배운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할머니보다 즐거웠던가? 이렇게 글 쓸 줄 아는 걸로도 즐거워하시는데, 내가 이보다 즐겁다고 할 수 있었나? "할머니, 세상이 이상한가 봐요 공부할수록 더 괴롭기만 하네요." 내 공부는 누구를 위한 공부였었나? 부모님의 바람이었을까 내 욕심이었을까. 더 배운 것이 왜 나를 괴롭히는 걸까?


내 아리송한 표정을 보시는 할머니, 말없이 웃기만 하신다. "할머니, 제가 아직 덜 커서 그런 거겠죠?"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시다 입을 뗀다. "더 크는 건 뭐라고 생각하니? 그냥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해, 너무 많은 생각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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