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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Oct 26. 2018

친절한 것, 친절해 보이는 것

#067_가면

일교차가 꽤 있던 4월 말, 피서는 에어컨으로 대체할 예정이니 여름 전 가족여행을 다녀오자는 아버지 말씀에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입실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일찍 도착했다. 오는 중 마트에 들려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점심을 먹고 왔는데도 1시다. 아버지는 펜션이니 이 정도는 일찍 오는 건 문제없을 거라 하신다. "에이 뭘, 펜션인데 그런 걸 따지겠어, 고기는 일찍 상하니까 고기만 보관하고 앞에 유적지에 다녀오자."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호텔도 아닌데 시간 가지고 그리 따지진 않겠지.' 우리는 짐을 들고 펜션 앞으로 갔다.


펜션은 잠겨있고, 관리실 위치를 몰라 건물 앞 테이블에 앉아 전화번호를 찾던 중. 자갈 밟는 소리와 함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펜션 주인이다. "네, 안녕하세요." 펜션 주인은 친절해 보이려 애쓰는 얼굴을 하곤 한탄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오늘 펜션 예약하신 분이세요?", "네, 생각보다 좀 일찍 왔는데 짐만 두고 나갔다 올 수 있을까요?" 주인은 이런 사람들 꼭 있다는 말투로 답한다. "아, 제가 꼭 3시에 체크인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느 분이 예약하셨어요?" 지인이 예약해준 터라 직접 통화한 적이 없다. "박진성 선생님이 대신 예약해 주셨어요." 펜션 주인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말을 붙였다. "일단 지금 체크인 안되시고요. 3시에 입실하셔야 합니다." 상당히 불쾌했지만 따지고들긴 애매했다. 어머니가 이야기하신다. "그럼 3시에 다시 와야겠네, 지금 날씨 정도면 고기 그냥 둬도 안 망가져 차에 두고 나갔다 오자." 아버지 표정을 보니 곧 터질 것 같아 팔을 끌어당겨 차로 돌아간다. "3시에 다시 올게요."


3시 입실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게 그리 강력한 규정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차에 올라타고 유적지로 향하는 10분 동안, '펜션인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불만과 '내가 혹시 작은 숙박업소라고 무시하는 건가'라는 자아성찰을 반복한다. 주인으로부터 받았던 불쾌함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는데, 입실 시간을 지키고 안 지키고 문제와 다른 것 같다.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펜션 주인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며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친절해 보이기 위해 교정된 목소리 톤, 듣는 내내 이질적이다.


유적지 탐사에 땀을 흘린 터라 씻고 밥을 먹자니 시간이 늦었다. 급히 준비하느라 쓰레기를 여기저기 널브러뜨렸는데, 야외라 식사 중 치울 걱정은 없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머니가 후식 준비하신다고 펜션으로 들어간 틈을타 쓰레기를 정리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두고 싶었지만 소개하여 준 지인의 얼굴이 떠올라 그러진 못했다. 대충 정리를 마무리 지었을 즈음 주인의 발소리가 들린다. "쓰레기 그냥 두셔도 되는데." 힐끔 보고는 대답했다. "여기 종이랑, 캔이랑, 비닐이랑 나눠뒀어요." 주인이 다시 답했다. "아니, 그냥 두세요. 어차피 제가 다시 정리할 건데요." 어차피 다시 정리할 거라니. 내 분리수거는 의미 없다는 말인가? 음, 그래, 분리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자. 근데, 이 이질감은 뭐지? 목소리가 친절하다고 친절한 건 아닌데. 


잠자리에 들어서도 불쾌함은 씻기지 않는다.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걸 꼭 자신이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했어야 이유가 있는 걸까?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1시간을 뒤척이며 고민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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