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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Dec 03. 2018

크리스마스트리

#076_안정

퇴근길 걸려온 친구의 전화, 잘 지내냐는 안부에도 대답하기 힘든 시간에 여자 좀 만나라는 폭력적인 언행을 뱉어댄다. 


"부모님도 아무 말 안 하는데 네가 왜 난리냐!"


짜증과 농담을 섞어 말했지만 대화의 내용보다 친구의 전화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뱉은 말이다. 지하철에 사람도 많았거니와 오전 내내 지친 몸이 다른 이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마음으론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몸은 자꾸만 밀어냈다.


개찰구를 나오며 살핀 사람들의 표정은 왜 그리도 우울한지, 회사 문을 나올 때만 해도 꼭 들리리라 마음먹은 카페로의 발길이 쉽지 않다. 사람들로부터 전염당한 우울함 혹은 내가 전염시켰을지 모르는 우울함이 집에서 쉬기를 바랐나 보다.


번화가를 헤매기 한참, 나를 멈춰 세운 건 한 그루의 크리스마스트리였다. 반짝거리는 작은 조명들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개운히 다독였는데, 정신사나이 반짝이는 모습에 집중하자 잡념이 사라진 이유일 테다.


평소엔 잘 마시지 않는 자몽 에이드를 마시며 트리를 본다. 올해도 다 끝이구나 라는 아쉬움이 제일 크지만 불분명한 앞날의 설렘도 즐겁다.


종교는 없지만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라는 기대를 준다. 딱히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기대감이 있다. 뭔가 바라고 원하는 것도 없지만 좋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 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일은 바쁘고 주말은 주말대로 약속이 있으니, 크리스마스가 한 해 정리를 위해 가장 여유로운 날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그랬던 건 아닌데 올해는 그럴 것 같다. (한적한 곳으로 꼭 여행 가리)


집에 바로 가지 않길 잘했다. 조명에 이끌려 잠시 머무른 시간으로 안정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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