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 그 짧은 순간 되새김 질 된 10년
폭풍 같은 며칠을 보낸 지난 목요일,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지만 점심 후 내내 잠만 잔 이유인지 머리가 멍 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며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저녁 9시쯤, 어둑한 공간에 밝은 스마트폰 불빛 때문이었을까 한줄기 날카로운 빛이 측두엽을 스치며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떠 올랐다.
11시 관람이 이유였는지 공간은 약간 허전하기도 쓸쓸하기도 했다. 너무 뒷자리는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중간 정도를 예약했는데 내 좌석 앞으론 아무도 없었다. 영화는 그냥 그랬는데 너무 기대한 모양이다. 그런 것치곤 재관람하고 싶은데 다시 한번 보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3일이나 흘렀다. 아이언맨의 죽음을 관람한 지 3일이나 흘렀다.
아이언맨의 마지막을 알린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2008년 영화화된 아이언맨의 개봉을 시작으로 11년 만에 개봉된 영화다. 아이언맨으로 시작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역사, 그만큼 이번화에서 그의 죽음은 의미가 크다. 그뿐이겠는가 그 세월 20, 30대를 보낸 우리에게도 적잖은 충격이다. 마블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도 아이언맨에 애착이 있지 않더라도 브라운관을 통해 그를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25살이던 2008년 24시간이라도 뛰어다닐 것 같던 그 시절 아이언맨은 대단한 영화였다. 공대생이었던 나에겐 특히나, 그나마 나는 덜한 편인 것이, 같은 공대생 친구들은 공부의 의미를 바꿀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공대생은 필수 시청이라던 말이 떠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디에서나 아이언맨을 말했다. 술을 마실 때도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그리고 미래를 말할 때 조차도, 그렇게 아이언맨은 한 시절 한 때 우리의 문화였다.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마블은 끊임없이 대작을 선보였다. 이번화는 22번째 영화라고 하는데 10년 동안 한 해 평균 2회라 생각하면 꽤나 많은 셈이다.
인간에게 10년이란 시간은 의미가 크다. 10대에서 20대, 20대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 특히 20대에서 30대는 취직, 결혼이라는 사회적 행위로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데, 욱하는 성질도 죽일 줄 알아야 하고, 남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그 요동의 시절 기억에 남은 영화 속 장면들이 떠 오를 때 인생의 장면이 겹치는 건 당연하다. 취업을 위한 시간, 사랑을 위한 시간, 아무 연관 없을 추억들이 영화 속 장면과 굳게 엮여 진한 냄새를 풍긴다.
어벤저스의 메인이기도 한 아이언맨의 죽음으로 마블 영화의 한 역사가 마무리된 만큼, 내 마음 또한 한 시절 마무리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눈을 감는 짧은 순간, 여타 영화와 같이 질질 끌지도 않은 그 짧은 시간, 그간 겪었던 추억들이 다양한 빛으로 내 감정을 헤집었다. 그토록 힘든 추억이었을까? 아니면 좋은 추억이었을까? 꼭 힘들고 좋아서 느낀 감정이라고 보긴 어렵겠다. 공허함을 그리 설명할 순 없다. 거친 감정은 10년이란 긴 시간이 한 장면으로 끝나버린다는 허무함이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겪어온 수많은 감정들이, 겪을 당시만 해도 인생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감정들이 찰나의 시간으로 일단락된다는 착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 주체는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내 역사 속에서 나라는 존재로 거듭났다. 하나 지금에 머무르지 못한 채 과거의 내가 끊임없이 미래로 밀어낼 거다. 그렇게 아이언맨의 죽음으로 내가 마무리될 수 없는 게 당연함에도, 그럼에도 짧은 시간 떠올린 10년 치의 감정에 휘말려 긴 공허함을 되새기고 있다. 하필 공허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