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첫차

무엇이 나를 먹여 살리나

by 감정수집

20 중반, 그러니까 10년 전쯤 격주로 토요일마다 알바를 갔는데 보통 압구정으로 갔지만 일에 따라 천안이나 안산까지 가기도 했다. 공릉에서 출발하는 1호선 끝자락까지의 지하철엔 보통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평일도 아니라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가 많은 덕에 두 시간가량 가로누워 가기도 했다.

그날도 가로누워 가던 길이었다. 유독 찌르는 햇살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는데, 억지로 뜬 어설픈 눈으로 텅 빈 지하철 공간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우릴 먹여 살리는 걸까? 대단한 사람? 잘 나가는 사람? 돈 많은 사람?’ 지금은 구분조차 꺼리는 큰 사람이라는 기준의 잣대로 00한 사람들을 쭉 나열해 보니, 높은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끼니를 떼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낡은 기어들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결코 우릴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허름해진 기어는 바꾸면 된다. 허나 바뀌더라도 그곳엔 꼭 기어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자리를 채워야 한다. 돈이나 명예가 충족되지 않아도 항상 그곳을 돌리는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무능력해서가 아니다. 그곳을 벗어나 큰 곳으로 가지 못한 사람을 무능하고 도전의식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도 될 만큼 공정한 기회 따윈 없다. 개천에서 용 날지 몰라도 모든 개천이 용을 만들어 낼 만큼 잔잔하진 않으니까.


지극히 개인적 사정으로, 개인의 생계능력이 먹고살고 말고의 문제의 답으로 귀결되나 싶었는데, 한참 지난 어느 날 압구정으로 출근하던 새벽. 졸고 있는 맞은편 사람들을 보니 이른 아침 편의점에서 산 김밥을 저들이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끼니 때우려 산 주먹만 한 김밥 하나조차 그들이 맞물려 돌아 만든 결과물이었던 거다. 바로 그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해낸 그들 덕분에 먹고 사는 거다. 누구 하나라고 콕 짚어낼 순 없지만 모두가 힘겨이 돌려낸 덕분에 삶이 유지되고 있던 거다.


어릴 적 어느 순간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오롯이 주체의 발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말이다. 실제 사회는 무한히 복잡하나 그 복잡성을 받아들이기엔 모든 사고가 안으로 굽어있었다. 사회생활이 중요하다는 건 아마 이런 의미의 개념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절대 방정식으로 가둘 수 없을 세상을 이해해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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