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

백수의 탄생 5화

by 감정수집

지난해 4월부터 8월, 5달 동안의 짧은 백수 생활은 반년이 지나도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백수의 탄생'은 그 간 복잡한 내 심정을 담은 글들이지요. 끝내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평생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고민했을지도 모르겠고요. 이제는 정리하려 합니다. 흙으로 대충 메웠을지라도 시간이 다져 주겠죠. '백수의 탄생' 마지막화로 지난 고민을 덮어야겠습니다.



1화​


2화


3화


4화







내 능력이었을까?

다시 일을 시작한 지금, 예전만큼의 사회적 높이를 누릴 수 없다. 동일 분야가 아닌 데다 학생 신분이라는 게 큰 이유일 거다. 간혹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자격지심일 거라며 삭히길 몇 번, 겨우 몇 달 전에야 스스로를 냉정히 바라보게 됐다. 나는 친절을 받을 만큼 훌륭했던가? 내가 받던 호의는 내 능력 덕분이었을까? 물론 모든 면에서 능력적이었거나 아니면 모든 면에서 그 반대이지는 않았을 거다. 자존심 상했던 건 능력에 대한 비중이 크길 바랐던 이유일 거다.


'백수의 탄생' 첫 화에서 썼듯, 내가 백수를 택한 이유는 지금껏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내 능력으로 쌓은 것이 맞을까 라는 의문이다. 지금은 알게 됐는가?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모르는 사람이 됐다. 돈 잘 벌면 능력인가? 지휘가 높으면 능력인가? 차라리 그리 생각했다면 편했을 것을, 바랬던 능력의 기준이 그곳에 없음이 더 큰 혼란의 시작이었다.



나는 세 번의 꿈을 이뤘다. 반대하는 이도 있었고 다소 어려움도 있었지만 헤쳐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내팽개칠 자신감은 거기서 쌓아진 거다. 문제는 세 번째 꿈 이후부터인데, 또 다른 꿈이 없던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이유로 포기하게 됐고, 덮친 격으로 건강이 악화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제야 다시 꿈을 가지게 됐지만, 기존에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자니, 지금 이 일을 시작해서 다시 올라설 수 있을까라는 불안도 있었다. 지금이라고 불안이 완벽히 가신건 아니다. 꾸준히 노력은 하나, 누가 그랬던가 예전 같지 않다고.


작가, 이 시대 가장 먹고살기 힘들다는 직업군 중 하나. 엔지니어가 어찌 작가를 택하게 됐나? 원래 그런 운명이었나? 원래 그랬을 운명은 없다 생각하나, 행여 그런 것이 있다면 어릴 때라도 잘 먹고 잘 살라고, 나이 먹으면 힘드니까 어릴 때 벌어 놓으라고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풍족한 어린 시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를 쓰고 싶다

나는 말이 많지 않다. 간혹 입이 터지는 경우를 빼곤 듣는 편인데 양변이 다른 방정식이 성립될 리 있는가? 듣기만 하는 삶이 가능할리 없다. 차곡히 쌓인 낱말들을 어딘가엔 전달하고 싶어 쓰기 시작했다. 마음속 그득히 발효되어 문장이 된 낱말들을 뱉어냈다. 무작정 적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모호한 목소리를 적기 시작했다. 최대한 읽기 좋게, 가능한 이해할 수 있도록 적으려 시간을 냈다. 고작 2년, 이제는 겨우 읽힐만 한 것 같다.


지금껏 이토록 익숙해짐이 느린 건 처음이다. 그럼에도 계속 쓰려는 건 잘 쓴 글과 좋은 글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이유려나. 돌이켜 보니 글을 잘 쓰려 노력한 시간은 거의 없다. 가능한 좋은 글을 쓰려 노력했고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잘 쓴 글과 좋은 글을 완전히 나눌 수 없는 걸 알지만 괜한 객기였을 테다.


명백히 나다. 내가 하고 싶던 말 그리고 내 감정. 그것은 정확히 나다. 누군가는 공감하고 어떤 이는 이해 못할지라도 가장 솔직한 나고, 제일 쓰고 싶다. 그가 아니고서야 내 욕심은 채울 수 없다. 물질도, 직위도 내 성취감을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두 번째 인생

누구보다 많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내팽개친 건, 남보다 조금 빠른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싶음이다. 그리고 다음 꿈을 향하기 위함이다. 세 번의 꿈, 어떤 분야의 상위권에 속했던 것도 아니고 완벽히 전문인이 되었던 것도 아니다. 허나 내 기준에선 이뤘다. 완벽한 1인자가 어디 있고, 완벽한 성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로 만족 못해 짐처럼 짊어지고 살긴 싫다. 나는 이뤘다.


두 번째 인생, 그건 네 인생을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라며 비난할 수 있다. 허나 삶을 어디까진 1부고 어디부터 2부인지 자를 수 없잖은가. 삶의 방식이 바뀌고 꿈이 바뀌었으며, 특히 추구하는 이상향이 달라졌다면, 그것으로 두 번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오늘부터 쌓아갈 앞날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나는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돌아선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