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수집

메마른 우물에 감성이 차 올랐다.

네 번째 여수 (1)

by 감정수집

대한민국에 가장 긴 다리가 생겼다며 건넜던 첫 번째 돌산대교, 고등학교 땐 어찌나 메말랐던지, 감동도 신기함도 느끼지 못했다. 원하던 대학, 원하던 직장을 얻은 후 두 번째 돌산대교, 이루고 싶은 건 모두 이룬 삶이었건만 마냥 즐겁지는 못했다. 무릎을 수술하기도 했고, 많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여수 엑스포 덕분에 건넌 세 번째 돌산대교. 돌 같은 심장에 바람이 깃든 진정한 여행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이가 찬 덕분이려나?


계획에 전혀 없던 네 번째 여행, 요즘 부쩍 친분을 쌓고 있는 동생들의 여행 계획에 합류하게 됐다. 동생들은 합천으로 갈 계획이지만 나는 하루 전에 떠나 여수를 들렀다 갈 생각으로 미리 출발했다. 처음 계획은 아침 일찍 출발해 돌산대교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쓸 작정이었지만, 숙소가 비싸도 너무 비싸 일정을 바꾸게 됐다. 지금은 여수 엑스포행 마지막 열차 안이다. 새벽 3시 반쯤 도착해서 거북선대교를 통해 돌산대교를 건너려고 한다. 이미 억지로 자 둔터라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집에서 나오는 길 찍은 사진, 해 없는 길은 한적하다. 가끔 지나는 배달 오토바이가 아니면 사람 사는 곳인가 싶다. 5년 가까이 살던 오피스텔을 떠나 이곳으로 온 지 1년 7개월이다. 고층 빌딩은 진즉에 떠날랬으나, 한두해 지낸 곳도 아닌데 쉽게 떠나 질 리 있겠는가? 박차고 나온 계기는 역시 지난 연인과 추억에 벗어나려던 이유였다.


이사 오고야 알았지만 나는 아파트, 오피스텔, 빌라 체질이 아니더라. 맘이 편하고 좋다. 도둑이 들진 않을까 걱정이 있긴 한데, 순찰을 자주 도는지라 안심하는 편이다. (완벽히 놓을 순 없고)


집을 나오는 길에 약간의 쓸쓸함이 돌았다. 혼자 여행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이런 느낌이 있어왔다. 전시회를 가던, 영화관을 가던, 공원을 가던 혼자 일 때 말이다. 나쁘지 않다. 많이 건조한 피부는 쉽게 쓸리지만 최소한의 습기를 머금은 피부는 질감을 잘 느끼게 해 주는 것처럼, 옅은 쓸쓸함이 깃든 심장 표면은 오돌토돌 돌기가 돋아 미세한 감정까지 확실히 알아챈다.



출발 전 찍은 사진, 서른 중반이면 어지간해서 설렘이 드물다. 하나 오늘 마음은 소녀 같아 꽃이 가득하다.


새로 맞이하는 돌산대교는 어떨까? 여수 밤바다 위로 비치는 지금 내 모습은 어떨까? 세 번째 돌산대교 후 7년이나 지났다. 이제는 안정을 찾을만하건만 아직도 새로움에 도전한다. 사이사이 여러 번의 지침과 주저앉음에도 여전히 달리려 한다. 이런 내 얼굴이 밤바다 위에 어찌 비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안해서 못 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