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수집

어깨동무 한 번 없이 내달리는 결승선은 재미없다.

네 번째 여수 (3)

by 감정수집

나를 여수에서 순천으로 끌고 온 친구 덕분에 합천까지의 길이 가까워(?) 졌다. 여수에도 순천에도 합천 직행은 없고 진주를 통해 가야 한다. 진주에 도착한 시간은 3시 20분. 서울에서 출발하는 합천 여행팀과 딱 맞춰 도착하길 바랐는데, 다행히 3시 40분에 출발하는 합천행 버스가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5시 40분까지 기다려했다.


기나긴 여정을 넘어 합천까지 온 이유는 고스트 파크 여행이다. 그냥 여행 삼아는 절대 갈 일이 없었겠으나, 공연하는 친구가 있어 방문하게 됐다. 고스트 파크는 말 그대로 공포 콘셉트의 체험장인데, 시설 말고도 뮤지컬, 마술, 디제잉 공연들 선보인다.



합천 도착과 동시에 분장을 빙자한 변신을 시작했다. 고스트 파크를 더 신나게 즐기기 위한 준비였다. 배워 본 적 없지만 타고난 손재주를 가진 분장술사의 마술로 멋진 귀신이 될 수 있었다.




고스트 파크에서 일하는 친구는 2018년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난 친구다. 거의 페스티벌에서나 만나지만 웬만한 친구들보다 자주 본다. 요즘 페스티벌이 많아진 이유겠지.


합천까지 방문한 직접적인 목적이라면 이 친구의 디제잉 공연을 보기 위함이다. 고스트 파크에 볼거리도 있지만 관심 없었고, 사람들 놀리는 재미가 더 좋았다. 분장이 워낙 훌륭했던 터라 잘 먹히기도 했고. 디제잉하는 친구는 경력이 많지는 않은데 타고난 센스가 있어 분위기를 잘 유도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공연기간 동안 실력이 향상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무대를 '씹어먹었다'. 그 표현보다 좋은 표현이 떠오르질 않는다. 원래 스테이지 위로 일반인을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덕도 있겠지만, 우린 그만큼 잘 놀았다. 무대에 올라서도 관중을 완전히 압도했다.



생각할 시간 가지려 방문한 여수, 분명히 실패다. 그나마 생각해 보려던 버스 안에서도 잠만 잤다. 하나 나쁘지 않다. 인생이 어디 의도대로만 되던가? 벌어진 시간은 벌어진 대로 누리면 되는 것을. 반대로 고스트 파크 여행은 사람들과 어울릴 목적으로 왔는데, 의도보다 과하게 달성됐다. 당연히 좋았다. 5년 치 아드레날린을 끌어다 쓴 정도로 신났다.


이번 여행은 의도한 것도 의도하지 않은 것도 누군가 함께했다. 오롯이 혼자의 여행도 좋지만 함께하는 여행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느껴본 것 같다. 조용한 여정만 즐기다 난리 법석하는 여행을 처음 해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고스트 파크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더 미친 듯 놀았는데, 식사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 눈초리 없이 완벽히 즐길 수 있었다. 누가 본다고 안하진 않았을 거지만.



'혼자는 빠르게 가지만 함께는 멀리 간다'는 표현이 있는데 진부하기도 하고 맘에 들지 않아서 '어깨동무 한 번 없이 내달리는 결승선은 재미없다'로 바꿔봤다. '빠르게', '멀리 간다'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는다. 어딜 빨리 가고 어딜 멀리 가야 하나? 바꾼 문장도 '내달리는', '결승선'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다. 하나 기존의 문장은 성공을 기반에 둔 뉘앙스라면, 새로 쓴 문장은 성공보다 성취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내포된 의미를 완벽히 전달하기엔 부족한 문장이지만 의도를 따지자면 그런 것. 물론 해석은 읽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우리 결승선은 디제잉 무대를 즐기는 것이었다. 나 혼자 즐겼다면 무슨 재미였을까? 무슨 추억일까? 물론 재미없진 않겠지만, 함께 즐긴 시간에 비교할게 아니다. 내 심장의 떨림이 그리고 친구들의 떨림이 서로의 어깨를 타고 넘어 진동을 배가 시켰다. 공진의 위력은 최첨단 시설을 일순간 무너뜨릴 만큼 대단하다. 우리의 행복도 그만큼 대단했다.


글을 쓰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훌륭한 사진을 남겨준 친구. 업무 때문에 밤늦게 합류했으면서도 군소리 없이 우리를 담아준 친구다. 친구를 위해 원샷을 남긴다.




5명의 단체샷이 없어 아쉽지만, 그나마 단체샷을 남겨본다.



그저 여행이래도 좋다. 혼자의 여행은 꼭 느껴야 하고, 여럿의 여행은 꼭 즐거워야 하는 건 아니다. 너무 기대하고 바라는 여행도 욕심이다. 가는 대로 흐르는 대로, 불행이 있어 행복이 있다는 것처럼. 이번 여행은 함께였기에 즐거움이 배가된 여정이다. 그동안 혼자만의 여행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것들이 설레게 한 여행이다.


다수의 이들과 어울린 다음날은 가슴속 황량함이 크다. 어떤 때는 고독감 때문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이번의 공허한 느낌은 지난 감정을 곱씹기 딱 좋을 정도로 건조하다. 너무 외롭지 않게, 혼자서도 비틀거리지 않은 채 이틀간의 감정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다음날, 공허함마저 행복으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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