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맨발 등산
맨발 등산
한발 두발
의미 없는 소비라 여기던 발자욱이 소중히 다가왔다
이쪽은 아플까?
저쪽은 시원할까?
다음 걸음은 어떤 느낌일까?
차가움, 따뜻함, 따가움, 거치름, 보드라움...
모든 느낌이 내 안으로 파고들어 인생 단 한번 겪었을 감정조차 끌어온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중한 걸음에 시야가 줄고 줄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는 천천히 한 걸음
저기는 급하게 한 걸음
다음 걸음은 한 발짝 옆으로 피해서
느리게, 빠르게, 피해서, 돌아서...
삶도 결국 내딛는 걸음일 뿐인가
지인 추천으로 실행한 맨발 등산. 추천받은 지 오래라 잊고 있었는데, 요즘 등산에 빠져있다는 분의 말에 떠올라 다음날 바로 산으로 향했다. 급히 해볼 일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해보자'라는 식의 다짐은 금세 잊는지라 바로 시행했다. 추천인의 말에 따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신경 쓰여 잡생각이 가신다고 한다. 그리고 등산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고. 이런 추천 사는 맨발 등산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나 직감했다. 실제로 해보는 것은 그것 상상 이상의 것을 내 안으로 들일 수 있을 거라고.
정상에서 시원한 물 한잔, 정상에서 사진 한 장, 정상에서 점심, 정상에서... 많은 이들이 등산의 목표를 정상으로 둔다. 맨발 등산은 그것이 어렵다. 단련되거나 쉬운 코스라면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초보인 경우엔 힘들다. 맨발 등산의 매력에 한 번에 빠지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어렵기에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야 하는 것이다. 누가 그어 놓은 선이 아닌 내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성공시키는 것에서 쾌감을 느꼈던 거다. 선택한 삶을 살면서도 목표 하나를 채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달성의 사회적 크기는 중요치 않다. 내 안으로 들어온 목표는 무엇이든 소중하니까.
맨발 등산이 만족스러운 또 한 가지는 발가벗겨진 발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질감이다. 거칠고, 보드랍고 어떨 땐 아프게 들어오는 촉감은 다양한 감정을 떠오르게 했다. 빨주노초파남보라며 선명하게, 때론 무슨 색이라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색까지 전달되어 형형색색의 마음을 형성했다. 연애가 좋은 것도 그러이 설명될지 모른다. 맞잡은 손의 살결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우리는 한정된 인공의 촉감을 느끼며 산다. 아무리 훌륭한 텍스처 디자인 제품이라도 자연이 주는 만큼의 스펙트럼은 어렵다.
산은 맨발을 통해 무질서의 아름다움을 줬다. 태생이 정리인 인생인지라 합리화를 통한 당위성을 꺼내 봤지만,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예측할 수 없음이다. 나 혼자 세운 목표는 언제나 수정되고 무산될 수 있다. 또 등산 중에 저곳은 덜 아플 거라 확신하고 내딛어도 아플 수 있다. 간혹 예상치 못한 촉감으로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맨발 등산을 매력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