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의 경계
여름과 가을의 경계
경계의 중심에 선 나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니다
나는 겨울일까 생각하는 순간
여지없이 봄이 살랑이고
나는 여름일까 생각하는 순간
거침없이 가을이 끼어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은 일관적이다
새롭다 해도 새롭지 않다.
하나 계절과 계절 사이는 새롭다
곁곁이 중첩된 겨울과 봄이
없는 것을 자아내고
알알이 뒤섞인 가을과 겨울이
있는 있던 것도 달리 보이게 한다
매년 3월과 9월은 과히 아프다. 서른 초반까지는 이유를 몰라서 괜히 짜증 내고 계절 탓만 했다. 힘도 없고 체력도 떨어지는 데다 무엇보다 의욕이 없으니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질문까지 짜증으로 토해냈다.
운동하던 사람이 운동 끊으면 더 나빠진다고 했던가. 그런 케이스다. 그렇다고 운동을 딱 끊은 것도 아니고 운동량이 줄었을 뿐인데, 이전 운동량이 월등히 많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운동량은 줄고도 처음에 식사량이 그대로였는데, 아무리 기초대사가 높데도 운동 없이 밀어 넣는 음식을 다 소화 할리가 없다. 게다 원래 소화기관이 약했던지라 흔들어 주는 활동 없이 정체된 내장 기관들은 거의 운동을 멈춰 버렸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소화기관들 덕에 식사량이 줄면서 몸에 공급되던 영양분도 줄었는지, 이전엔 없던 병까지 하나씩 생겼다.
악순환의 반복으로 체력이 떨어지자 계절 변화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짐이 무서운 건 수치상 아무 문제없는데, 어딘가 계속 아프다는 거다. 내 경우가 특이할 수도 있는데,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도 건강하다는 소견만 돌아왔다. 그냥 건강한 것도 아니고 매우 상위권이란다. 어지럽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영양 부족을 생기는 작은 병들은 있었지만 신체상 문제는 전혀 없었다.
원인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작년쯤 동호회에 한약사 한 분이 가입하셨다. 당시도 계절이 변하는 시기였던지라 계절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계절이 변하는 시기에 사람의 몸, 특히 내장기관들도 계절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요."라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몸이 왜 이런지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 왜 사람들이 많이 죽는지 한 번에 이해됐다. 그분은 덧붙여 이런 말도 했다. "신체와 정신이 관련 없는 것 같지만, 내장 기관들에 문제가 있으면 정신적으로도 변화가 생겨요."라고.
즉, 체력이 떨어진 후로 계절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였던 거다. 당연히 그뿐만은 아닐 테다. 스스로 감정을 좀 더 느껴보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원인일 거고, 그 사이 겪은 새로운 인생사도 원인일 거다. 무엇으로 촉발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원인들이 뒤섞인 결과일 거다.
아픈 원인을 어렴풋이 알게 됐고, 심적으로 나를 이해하게 됐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상징적 변화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일탈로 생각했건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신체가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모든 원인을 귀결시킬 순 없다. 시각적으로 달라지는 영향도 있을 거고, 옛 여자 친구를 떠올리는 이유도 있을 거다. 내가 겪는 수준으로 몸이 알아차리게 영향을 받는 건 순환적인 영향이 크다고 한다. 계절에 따른 신체 변화와 정신 간의 관계는 무엇이 먼저 말하기 어렵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 영향을 끼치지만 또 반대로도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즉, 무엇이 먼저 나쁘기 시작한 지는 모르지만 신체가 정신을 또 반대로 정신이 신체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악순환이다.
일교차가 심한 시기 가장 크게 다가오는 감정은 공허함이다. 딱 골라 말할 순 없지만 에둘러 말하자면 그렇다. 처음 겪었을 땐 무척이나 힘들었다. 허둥대고 당황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 지자 몸은 더 아프고 쑤셨다. 지금이야 조절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처음엔 말 그대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다시 다가온 계절의 경계, 나는 지독히도 공허함을 느낀다. 이성이 없다고 짙어지지 않고, 있다고 옅어지지도 않는다.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인간이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어느 계절에도 속하지 못한 내 마음은 휑한 사막을 떠돈다.
처음 휑한 사막에 우두커니 섰을 땐 따갑고 쓰리고 온통 거칠었다. 날리는 모래에 눈조차 뜰 수 없었다. 그곳에서 처음 느낀 심정은 그랬다. 오갈 곳 없는 마음이 스스로를 고립시켜 스스로를 더욱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한두해 정도일까? 그곳에서 또렷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게. 지금이야 별 대수롭지 않지만 그땐 그게 얼마나 힘들던지. 그냥 스스로를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어둠을 걷히며 지금 순간에 섰다. 시처럼 푸념처럼 앞서 적어 낸 글은 아픔으로 겪은 힘듦이 아니라 그것으로 보인 새로운 세상을 적었다. 휑한 사막은 여전히 마음을 쓰리고 따갑게 하지만, 그곳에서 정신을 차리고 또렸히 바라보자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경계 속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 위에 선 내가 돌아보는 세상은 신비함으로 가득하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여태껏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도 달리 보이게 했다. 그렇게 나는 변화했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온전히 받아낸 계절을 지나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경계선에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