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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Dec 30. 2019

순이의 용기

#091_용기

순이와 짝이 된 건 6학년에 올라서다.

나는 5학년에 들어설 때 이 학교로 전학 왔다.

순이와는 1년 동안 같은 반이었지만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야 이 선 넘어오면 안 돼"

짝이 된 후, 입을 열어 처음 꺼낸 소리다.


서먹한 친구에게 쉽게 말 건네는 성격은 아닌데,

쎄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책상 한가운데 짙은 선을 그으며 너와 나를 구분했다.

순이는 손가락질받거나 따돌림당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말없고 조용했을 뿐 특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인기 있고, 재미있는 친구와 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심술을 부렸을 테다.


무려 3달 동안나 우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떠드느라 바빴지만,

순이는 선생님의 질문 외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볼펜도 아니고, 연필로 그은 선이 세 달이 지나도 선명했다.


처음 선을 넘어온 건 순이였다.

인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던 순이는

노트 구석에 '같이 보면 안 돼'라고 적어 선을 넘겨 내게 비쳤다.

사실 몰랐다, 그랬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한참 뒤에야 쪽지를 봤는데,

쓴 글을 보니 미안해졌다.


  ‘같이 보자고 말했을 수도, 쿡 찌를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혹시 말하기 싫어서 조용했던 게 아니었나?


말하기 싫거나 혹은 말이 없는 아이라 생각했다.

대화를 어려워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내 모습 때문에 더 미안했다.


서먹한 이에게 쉬이 다가가는 타입이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을 그대로 두기 싫어 용기를 냈다.

쉬는 시간엔 여전히 친구들과 떠들었지만,

수업 시작 직전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말을 붙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짧은 단어로 대답했다.

작고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되려 배려하려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한 학기가 지날 무렵,

우린 꽤나 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됐고,

무표정했던 순이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조금 어색했지만 분명 즐거운 얼굴이었다.


방학 날, 우리 사이 장벽은 희미해졌다.


20년도 훌쩍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것이 나의 용기였다 생각했다.

한데, 글을 쓰고 보니 그건 순이의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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