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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Nov 08. 2019

날것의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틈

#089_주체성



두 분에게 모티브를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01. 모티브_1
"누가 사람을 결정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아요."
6년 전, 캔버스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첫 수업 날 실습이다. 30명이 조금 넘는 강의실, 앞선 절반 가량의 소개는 웃음으로 진행됐다. 그가 눈으로 채워진 사람 그림을 보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질 때 까지는 말이다.

#02. 모티브_2
"요즘 사람들은 너무 남을 의식하고 사는 것 같아요."
이틀 전, 미팅 중간 잠깐 쉬는 사이 그분의 그림을 보게 됐다. 아름다운 여성 사진을 몸만 잘라 하단 중앙에 위치시켰고, 그 위로는 수많은 눈들이 물줄기 같이 흘러 그녀에게 들어가는 그림이었다.


#03. 주체성
날것의 나와 보이고 싶은 나의 벌어짐. 그 틈매가 넓을수록 괴리감은 커지고, 주체성을 상실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다.

#04. 고유성
자신의 생각이 완벽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경험으로 빚어진 결과라며 말이다. 그럴지라도 실물로 존재하는 '나'는 고유성을 띤다. 그러니 내 안에 익숙한 도구들만 있더라도, 그것들로 새로운 나를 만들 가능성은 충분하다. 누구의 뒤를 따르는,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가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를 위한 '나'로 말이다.

#05. 나
밖으로부터 채워진 에너지는 배터리와 같아 금세 소모되지만, 나 스스로 발하는 빛은 태양과 같이 오래가며, 셀 수 없이 많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00.
05번은 내 20대를 지배한 문장이다. 아마 당시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쓰게 된 말인 것 같다. 한동안 잊었었는데, 이틀 전, 그림을 보자 다시 떠올랐다.

이런 류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오랜 기간, 따지자면 인문학을 처음 접한 6년 전부터 고민했다.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해"라며 자신 있게 말하지만 그림은 도저히 안되더라. 이 그림도 역시나 이틀 전, 그분의 그림을 보고 시도해 본 것이다. 쏙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만족한다.



* 여성혐오 아닙니다. 남자 사진으로 하고싶었는데, 적절한 무료사진을 못 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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