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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Feb 21. 2020

"다녀왔습니다"

#100_고름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자 절로 흘러나온 첫마디. 부모님 돌아가신 지 10년이니, 사람 온기 그리웠을 공간이 안쓰럽다. 뭣이 바빠 이제 왔는지.


어릴 적엔 작은 집이라, 작은 마을이라 생각했다. 한데, 돌아와 보니 어제까지 있던 곳이 좁다는 걸 깨닫는다. 그곳을 크게 생각했던 건 성공에 대한 갈망이었겠지. 쪼글쪼글 쭈그러들기만 했는데, 이곳에선 몸과 마음 제 아무리 뻗친데도 걸릴 것 없다. 참 넓은 곳이다.


어린날의 풋풋함과 부모님 인생이 담긴 공간. 자식들 키우면서 이렇게 집 까지 만드셨다니. 참 대단하셨구나. 그때 부모님보다 지금 내가 더 많은 나이인데, 나도 그만큼 성숙한 사람일까? 치이고 떠밀려 그저 흘러내려온 건 아닐까? 이 공간을 도피처쯤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쓸리고 또 쓸리다 보면 굳은살이라 괜찮아진다더니, 아직도 가슴에 고름이 흐른다. 나는 노력했다. 끈적한 진물 보이지 않으려 매일 아침 닦았다. 하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면 어김없이 흥건해졌다. 닦는다고, 덮는다고 사리지지 않을 상처였던 거다. 아물겠지, 이곳에선 아물겠지.


반듯하게 배치된 가구들, 가지런히 쌓인 식기들, 너저분한 장식품 하나 없이 말끔한 선반들... 어머니 생전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다. 집안 곳곳에서 부모님 모습이 아른거리지만 그립지는 않다. 10년이란 시간이 지우개 역할을 했나 보다. 


잘 곳만 조금 닦아내고 누워야겠다. 어차피 남은 게 시간인데 청소야 한 달이 걸리든, 일 년이 걸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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