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_이완
한 해 건너 도착한 고향 바다. 겨우 2시간 거리라 주말에라도 올 법했지만, 마음의 거리가 멀었던 걸 테지. 매년 이 곳에서 탁 트인 바다와 푸른 하늘을 봐왔다. 쌓인 것들을 풀어내고, 힘을 북돋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한데, 2년 동안 겹겹이 들어찬 고난들 덕분일까. 오늘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아 답답하다. 제대로 엉켜 붙은 모양이다. 고구마 세 개쯤 쑤셔 넣은 목 구녕 마냥 목멘다. 여기서도 해소가 안된다 생각하니, 두근거리며 가슴이 아려온다. 음식 먹다 막혔을 때도 억지로 내리려면 아픈데 오죽하랴.
이대론 무리일 성싶어 두리번거린다. 금지구역이라 조금 눈치 보였지만,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난간을 넘어 바위에 앉았다. 건너오는 길에 약간의 젖음을 감수해야 했지만 대수롭지 않다. 걸터앉기엔 낮은 높이라 발목을 엑스자로 꼬고 가부좌인 듯 아닌 듯 편한 자세를 찾았다. 바람과 빛살을 한껏 받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고, 꽤 오랫동안 미동 없이 이곳을 받아들였다.
소리 날 리 없는 낮게 일렁이는 파도가 들린다. 지평선 넘어오는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를 빠르게 훑는다. 구름 섞인 푸르름을 음미한다. 세상이, 지구가 나에게로 들어오려는 듯하다. 뼈와 뼈 사이 들어찬 긴장감이 녹아내리고,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면밀히도 나를 느껴본다.
훤히 보이던 가르마 주변으로 머리칼이 들어찬다.
미간에 쌓인 짜증이 풀리고,
악에 받쳐 뭉친 양 볼의 근육이 이완된다.
한 움큼 쥐어질 만큼 뭉친 승모근은 집게손가락으로 쥐어질 만큼 보들보들해지고,
모니터 보려 치 올랐던 어깨가 차분히 내려앉는다.
명치 가득 응어리진 먹먹한 것은 배꼽 밑 단전까지 내려앉고,
굽었던 허리가 펴지며, 디스크가 제 자리를 찾는다.
책상에 앉아 있으랴 퍼진 엉덩이는 온몸을 지탱하려 솟아오르고,
허벅지와 종아리는 당장 뛰어갈 수 있을 만큼 탄력이 오른다.
언제나 찌꺼기 그득 쌓여 부푼 발바닥에서는,
발가락 끝마디부터 저릿저릿한 것이 썩은 노폐물 끄집어내려 피가 돌기 시작한다.
박동 소리가 귀 옆까지 흘러나오고,
심장에서 뿜는 뜨거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몸은 준비가 됐으니 이젠 내 마음의 차례다. 2년간 등에 짊어진 것들을 풀어 바다에 던지자. 다 잊어도 좋다. 알아서 되돌아올 것들이니 버려도 괜찮다. 그러니 오늘은 내 마음의 무게 정도만 들고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