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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Aug 28. 2020

선택의 무게

#110_선택

"이번 제품 개발 건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팀장님 의견처럼 순익 비율이 높지 않아요. 회사 몸집 키우기는 그만합시다. 여기 임원들 배 채우느라 현장 직원들을 쥐어짤 순 없어요."


미팅이 끝나고 하나둘씩 일어난다. 일어나는 눈초리에 공감이 보여 다행이다. 답답한 마음에 강하게 표현한지라 걱정했는데 말이다.


경영 본부장이 마지막으로 나가며 한 마디 던졌다.


"대표님, 매번 빠르고 확실한 선택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팀장님 보고서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나가면서 불을 끄려다. 움찔하더니 그대로 둔다.


"오늘도 마지막에 나가실 거죠? 불 켜 두고 가겠습니다."


"예, 오늘은 저도 식당으로 가겠습니다."


임원 미팅 후, 매번 직접 불을 끈다. 꺼짐 또는 켜짐, 0 또는 1, 예 또는 아니오. 대표직으로써 할 일도 스위치와 마찬가지다. 0과 1중 하나의 상태를 선택해 예 또는 아니오를 고르는 거다. 결정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간결하다. 경영 본부장 말대로 빠르고 군더더기 없다. 주변인들이 보는 나는 그렇다.


꺼진 상태의 스위치를 켤 때, 켜진 상태의 스위치를 켤 때, 찰나의 순간 스위치 안의 미세한 세계에선 물리, 화학적인 치열한 움직임이 발생한다. 인간이 정의한 시간으론 소수점 몇 자리나 내려가야 겨우 표현될 정도다. 스위치는 그 요란한 몸짓을 속으로 감추고 두 개의 모습만 우리에게 보인다.


안건을 결정하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두 시간 정도다. 10분 채 안 걸리는 사안이 많지만, 오늘같이 중대한 건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하나, 두 시간을 다 채운데도, 결정은 꽤나 어렵다. 애써 활기찬 표정을 보이려 해도, 뇌세포 하나하나 움직임까지 느껴질 듯 예민해지고, 공기 알갱이 하나까지도 어깨를 짓누르는 듯 뒷목이 결린다.


직접 스위치를 끄는 건, 치열한 움직임을 보듬어 보려는 마음이다. 그것으로 혹시 나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몰라서. 내 몸이 가벼워 질지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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