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_센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37살이라면 68번쯤은 했을 질문. 20살 때부터 분기마다 한 번씩이라 치면 그렇다는 건데, 더 많이 했다면 했을 테지 그보다 적지는 않을 거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 왠지 그날따라 어깨를 결리게 할 때. 인생에 대한 질문이 대수롭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에 상응한 합리화 기술 덕에 힘들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데, 아주 간혹 어깨를 결리게 할 때가 있다. 그날도 어깨가 약간 저릿한 상태였다. 그간 바쁘던 업무에서 약간의 여유를 찾았을 때, 하필이면 요동치는 일교차가 어깨로 스민 탓이다. 보통 감정이 수렁으로 빠진 날엔 아무도 안 만나는 편인데, 이미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친구를 만나게 됐다.
"나도 작년에 그랬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놈에게서 나온 소리가 나도 작년에 그랬다는 소리였다. 자기는 다 겪어보고, 다 이겨냈다는 그런 투로 말이다. 삶에 대한 고민이 정말 깊었다면 그렇게 가볍게 입 밖으로 낼 수 있었을까? 여태껏 감정에 맞서 본 적 없이 바쁘게만 살아온 친구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수 없이 감정에 맞서 왔지만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친구를 이해한답시고 되려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네가 겪은 것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달라"
친구가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내가 마음에 상처를 줄 순 없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별로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지'. 어릴 적 과히 내성적이던 내게 자주 그런 말을 하셨다. 사회생활이 힘들 줄 아셨나 보다. 외골수 성향이 없지 않아 있는지라, 나 할 것만 잘하면 된다 생각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생각이 바뀐 건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다. 학부생 시절부터 실험실 생활을 했던지라 직장생활 후 되려 개인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고찰이 더 길어졌고, 깊이가 조금씩 생겼다.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 사회를 잘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내 감정이 중요한 만큼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것들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했던 시절을 지나, 감정에 치우쳤던 어떤 시기도 있었다. 다행히 요즘은 적절한 교차점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두 유형을 논리형, 감정형이라 표현하자면, 대게 딱 봐도 어떤 성향인지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고, 완전히 한쪽 성향이라기 보단 적절히 섞여있다. 한쪽으로 심한 경우도 있긴 한데, 경험상 그런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혹시나 둘 중 어떤 유형이 더 싫냐고 물어본다면 후자 쪽이다. 사회 초년기에 직장에서 겪었던 일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서, 나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동기와 언쟁했던 사건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강력하게 박혀있다. 이래도 맘에 안 들고 저래도 맘에 안 드는 내 까탈스러움이 더 문제였겠지만.
싫어할 수도 없는 친구, 그런 말 아니었다면 무엇하나 맘에 안 드는 구석도 없던 친구에게 실망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에 대한 실망감이 아니라, 정답 없는 사회에 적응한 사람들을 그저 센스 있는 사람이라 표현하는 게 전부 일런지라는 생각이 지하철 전경을 거칠고 낯설게 보이게 했다. 삶에 대해 고민한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더 나은 사람은 또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