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종교를 가진 친구를 만나다
한해 4번 정도, 분기에 한번은 연락오는 친구가 있다. 귀찮아서 받지 않을때도 있지만 받을때면 어김없이 식사 약속을 한다. 그리고 친구와 만난 날 식사 동안에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일은 잘 되는지 시답잖은 근황토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건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부터인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와 동시에 사상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다 친구는 일반적이지 않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다. 흔히 사이비 종교라 하는데 필자는 흔하지 않은 모든 종교를 사이비 종교로 치부하고 싶지않다. 개중에는 정말 훌륭한 사상을 가진 집단도 있을테니 말이다.
나름대로 사이비냐 아니냐를 기준짓는 잣대 중 첫 째는 종교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용도로 지나친 금액을 요구하지 않아야 하며, 두 번째는 도덕적 범위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길가다 흔히 당하는 사례인데, 조상이 어쩌구, 집에 우한이 어쩌구 하는 종류로 조상에게 잘해야 집안이 잘 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유혹해 제사상이 미리 차려진 곳으로 유인한 후 조상을 위해 미리 차려놓았으니 제사상 비용을 내라는 식이다. 물론 여러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직접 겪을 사례기에 자세히 언급해 본다. 두 번째 경우는 완전히 비 상식적인 경우로 육체적인 가해나 다른 행위를 요구하는 사례로 매체를 통해서는 봤으나 실제로 겪어본 적은 없다.
친구는 아직 위 두 가지 기준에 어긋나는 요구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에 사이비로 취급하진 않는다. 다만 한구석 친구가 걱정되는 것은 글 제목과 같이 논리는 있으나 진리는 없기 때문인데, 종교적 사상을 논하면서 사실 근거 없이 추정 만으로 종교의 당위성을 입증하려 하기 때문이다. 단순 나열된 사실의 상관관계를 마치 인과관계인 듯 말하는 것인데, 친구의 주장은 이렇다.
"자전과 공전이 일어나는 지구는 12월을 지나 다시 1월로 돌아가고,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다시 봄으로 돌아간다. 모든 식물은 1년 동안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하고 죽음 뒤에 다시 생명을 얻는다. 사람도 마찬가지 이다. 자연의 이치대로 생명을 다 소진하고 죽음 맞이한 뒤 새 생명을 얻는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는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후 이야기를 듣고 나서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음을 알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구천을 떠돈다고 9단계의 저승이 있는데 일정 이상의 단계로 올라가야 환생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사람은 환생을 위해 이승에서 일정 이상의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구천이란 용어는 불교학에서 명확히 정의된 단어인데, 불교학은 고도로 연구된 학문이기에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고 윤회라는 개념이 있기도 하다. 다만 환생을 위해 이승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데, 아무리 좋은일을 많이 해도 환생까지는 부족하기에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그러면서 필자는 머릿속으로 하나씩 정리하였다.
1.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것은 도대체 뭣을 해야 한다는 거지?
2. 환생 하려고 저렇게 매일같이 돌아다니며 설교하는 짓을 평생 하고, 그래서 실제로 환생하면 또 환생하려고 저 짓을 또 하고 다녀야 하는건가?
3.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랑 식물이 다시 태어나는건 무슨 관계지?
4. 계절이 다시 돌아오듯 사람도 정말 환생하는 걸까?
그리고는 친구에게 하나씩 되물었다.
"환생을 위해서는 구천의 일정 단계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리고 환생을 하려고 그렇게 노력하면 지금의 인생은 단지 환생을 위한 인생인가? 그래서 만약 환생을 한 후에는 또 환생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과 식물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은 단순 상관관계를 가질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식물이 시들고, 열매를 맺기 좋은 시기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지 지구의 공전 때문에 식물이 죽고, 살고를 반복하지 않는다. 비닐하우스에서 식물 키우는 것을 보면 알지 않는가? 사람이 죽고, 사는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은 일련의 현상들을 상관관계로 엮은 말일 뿐이지 개별의 진리를 논하고 있지는 못하다."
필자의 물음에 친구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하는 말이라곤 자신은 아직 공부를 많이 못해 학문의 깊이가 낮으니 나중에 잘 아는분을 데리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논리를 펼치는 건지 너무 궁금했기에 흔쾌히 그러자고 했지만 아직까지 그러지는 않았다.
필자가 말하는 논리는 있으나 진리는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일련의 현상들을 나열하고 그것들 간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마냥 설명하는 것, 각각의 현상들에 대한 정의가 잘 내려지지 못했고 종교적 가치가 반영된 진리가 탐구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필자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인 환생을 위해 이승에서 무언가 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 했던것이 친구에게 불신을 갖게된 원인이었기에 적어도 그것에 대한 정의부터 적절해야 했다. 만약 아래 정도라면 충분히 괜찮은 종교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석가모니, 예수 그리고 공자 모두가 이승에서는 사람이었듯 우리도 사람이다. 따라서 신적인 존재를 믿고 존경하는 것은 효도를 잘 함에서 부터 시작한다. 나의 효도는 부모님의 효도가 되고 또 부모님의 효도는 그 부모님의 효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신적인 존재에게 바라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효도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효도란 자녀가 부모에게 경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하는 행위로 과거에는 살아계실때, 장례를 치를 때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모두 예로 모셔야 한다고 했지만 요즘 세상은 많이 달라졌기에 살아계실때 최선을 다 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장을 치르지 않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예로써 섬길 수 있다.
또한 예로써 섬긴다는 것은 ..."
이것도 흠은 있지만 그 친구와의 지난 관계를 생각해서 이정도라면 이해해 줄 법도 했다. 그렇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커녕 친구는 정말로 필자가 자신의 종교에 관심이 있는줄 알고 후에도 끊이지 않고 연락이 왔다. 이후로 몇 번이나 더 만나도 역시나 이미 일어난 사실들을 엮어 마치 그것이 인과관계를 가진냥 현혹시키려는 말 뿐이었다.
아마 강압적인 무언가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깊게까지 진위 여부를 따지지는 않았을테다. 진리를 논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피해주지 않는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시작 되었다 "논리는 있으나 진리는 없다"는 표현이. 진리라는 표현까지는 좀 거창하기도 하지만 "논리는 있으나 정의는 없다"라는 말보단 그래도 뭔가 있어 보여 제목으로 택했다. 순환논리 오류와 의미가 유사하기도 하다.
시작 이야기는 재미있어할만 한 데다 필자가 실제로 겪은 일을 쓰는데서 시작했는데, 이 후에는 제목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이 방법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무거운 내용들도 작성될 예정이다. 필자가 철학을 전공했다면 더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으련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적어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