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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정수집

따지지 못해 가슴에 남은 말

마음과 공학_047

by 감정수집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순서를 기다렸다. 정원이라 부르긴 민망한, 가로세로 2미터 정도의 공간이 있었는데 해가 꽤 내리쬐는 날이어서 완전히 밖으로 나와 그늘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있었다. 뒤에 오는 손님이 줄 서있는 거냐며 묻자 안에서 이름 적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뒤에 왔던 손님이 식당 입구 앞 작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식당 직원 목소리가 들리더니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얼른 들어가 문의했다.


"저희 먼저 왔는데 왜 다른 분들이 먼저 들어가죠."


"앞에 안 계셔서, 앞에 계신 분들 먼저 들어오라고 했어요."


"아까 이름이랑 전화번호 적었는데요."


"앞에 안 계셔서요."


연락처를 받아 적은 사람과 손님을 받은 사람은 다른 직원이었다. 어쨌든 너무 화가 났는데, 너무 화가 나니까 말이 안 나왔다. 게다 전날 잠을 못 잤던지라 대꾸할 힘도 없었고.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던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분도 이것저것 따졌다. 계속 따지자 마지못해 한다는 소리가 서비스 더 드릴 테니까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 화를 내고 싶었는데 정확하게 어느 포인트에서 화를 내야 할지 몰라서 잠시 고민하다 일단 밖으로 나왔다. 나온 후 그냥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여자친구는 지금 시간에 어딜 가냐고, 다른데 가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 왜 가냐고 하는 것이었다. 짜증이 상당히 올라왔지만 참았다.


입장 후. 세 가지를 주문했다. 이미 주문이 밀려있었는지 거의 40분이 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처음 나온 건 파스타였는데, 맛이 없진 않았지만 떡져있었다. 일주일 후에야 알았는데 파스타가 떡지는 이유는 조리 후 식은 걸 재가열 해서 그렇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더 열받는다. 파스타를 중간쯤 먹었을 때 수제 햄버거가 나왔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떨쳐 내려고 기대에 부푼척하며 썰었다. 평소에도 햄버거를 좋아했던지라 한 입 먹으면 기분이 다 풀어질 것 같았다. 한데, 도저히 썰리지 않았다. 썰었다기보단 뜯어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만큼 패티가 뻗뻗히 굳어 있었다. 어쨌든 한 조각 썬 후에 낱낱이 흩어진 패티와 빵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는데 세 번 정도 씹은 후 바로 뱉었다. 뭐라 설명하기도 역겨운데 그냥 고무였다. 패티가 고무같이 굳어 다음날까지도 씹어야 할 정도인 것이다. 내가 가지고 나가면 폭발할 것 같아서 여자친구가 가지고 가는 걸 그냥 뒀다.


어찌어찌해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 후 여자친구가 따졌다. 우리는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아까 사과를 못 받았다고. 화내고 싶었지만 직원이 사과하는 모습에 또 약해져서 아무 말 않고 나왔다. 그날 이후로 이틀 정도는 생각이 머리에서 가시지 않았다. 자책도 없지 않았다. 왜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당시 내가 화났던 상황을 정리하면 첫째, 식당 내부 운영 문제로 잘못된 것을 손님 탓을 한 것. 직원인지 사장인지, 대기 순서를 따로 적지 않기로 했다는 변명을 하는데, 명백히 내부 사정인 것을 손님 탓한 것이 가장 화났다. 두 번째, 불성실한 음식.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파스타와 햄버거 둘 다 재가열한 음식임이 분명해 보인다. 셋 째, 여자친구의 만류. 넷 째, 혼란한 정신 때문에 제대로 따지지 않은 것. 이런 이유들로 근래 들어 가장 화나는 사건이었는데, 당시 잠을 못 자 머리가 혼란스러웠던지라 여자친구를 설득하지 못했고, 제대로 따지지도 못했다. 성격상 웬만한 일들은 돌아서면 잊는 스타일인데, 선 넘는 일이 발생하면 법적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문서화까지 한다. 흔히 말하는 세숫대야는 큰데 한 번 쏟아지면 걷잡을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애석하게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다시 따질 수도 없는 사건이 되어 마음에 남아버렸다. 당시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고 잘 정리하고 보니 화가 난 이유가 네 가지로 명확해졌고, 한층 더 애석하게도, 어이없게도 '자유 물체도'라는 개념이 내 감정을 뚜렷이 정리한 방법과 유사한 느낌이라 이렇게 글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잔 감정이 남아있는지라 쓰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화가 올라왔는데, 이번 글로써 완전히 잊혀지길 빈다.



"본인들 내부에서 생긴 문제를 왜 손님탓을 하세요. 인성에 문제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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