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공학_050
선반이라는 기계장비에서 턴테이블 같이 물체를 회전시키는 부분을 '척'이라고 한다. 척에 쇠를 물린 후 공구를 밀어 넣어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할 수 있다.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물레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만 선반은 주로 가로로 가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자기는 형상을 만들 때 손이나 조각칼 등을 이용하는데, 쇠를 깎을 때에는 '바이트'라 불리는 도구를 사용한다. 바이트와 가공 대상인 쇠와 직접 닿는 부분에는 쇠 보다 강도가 높은 또 다른 쇠를 끼워 사용하는데, 이를 '팁'이라고 한다. 즉, 바이트 끝 부분에 팁을 끼워 회전하는 가공 대상물에 밀어 넣으면 쇠가 깎이는 방식이다.
보통 가공 대상이 되는 쇠는 원통형으로 주어지는 이유로 때에 따라 많은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호리병 모양을 가공한다고 하면, 몸통 부분은 부피가 있지만 주둥이 부분은 얇기 때문에 주둥이 부분의 재료를 많이 제거해야 한다. 선반에서 사용하는 가공 대상물이 되는 소재를 '환봉'이라 부르는데, 환봉은 단면이 둥글고 긴 막대기로 형상에 굴곡이 없고 동일한 단면이 길게 뻗어져 있다. 때문에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가장 큰 단면을 기준으로 환봉을 사용한다. 호리병과 같은 형상을 만들려면 얇고 긴 부분에 제거할 쇠가 많은 이유다.
제거해야 할 부분이 많을 때 사용하는 바이트와 팁, 그리고 면을 매끄럽게 만들 때 사용하는 바이트와 팁은 종류에 차이가 있다. 제거해야 할 부분이 많을 땐 더 강한 팁을 사용하고, 면을 매끄럽게 만들 때에는 상대적으로 강도가 떨어지는 팁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쇠를 많이 제거할 때에는 가공 표면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상용 판매하는 팁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면을 매끄럽게 만들 때 사용하는 팁은 가공할 때마다 작업자가 직접 손질하는 데, 팁의 날카로움 정도를 맞추기 위함이다. 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팁도 상용화된 것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수한 가공 품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네모난 모양의 손톱만 한 재료로 판매되는 것을 용도에 맞는 형상으로 연삭 가공하여 사용한다. 연삭가공은 회전하는 숫돌이 장착된 장비에 물체를 갈아내어 원하는 형상으로 만드는 방법을 의미한다.
선반 가공에서 우수한 면 가공 품질을 내려면 날카로운 팁을 사용해야 하는데, 날카로움의 정도와 각도, 속도 그리고 적절하게 윤활액을 분사하여 우수한 품질을 낼 수 있다. 이때, 각도와 속도 그리고 윤활액은 이미 연구된 결과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데, 날카로움의 정도는 쉽게 만들어 내기 어렵다. 현미경과 같은 장비로 날카로움 정도를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제시간에 가공을 완료할 수 없다. 날카로움의 정도를 잘 찾았다라도 금세 다시 무뎌지기 때문에 한 물체를 가공하는 와중에도 몇 번 더 손질하곤 한다. 가공 중 손질이 필요할 땐 장비에 바이트를 물려 놓은 상태로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갈아내는데, 이것이 작업자의 능력에 따라 가공품의 면 품질 수준이 나뉘는 이유다.
작업자가 팁의 날카로움을 어떻게 다듬어 내냐에 따라 선반에 물린 쇠의 최종 품질 수준이 나뉜다. 팁은 너무 날카로워도 안되고, 너무 무뎌도 안된다.
'바닷가에 살면 목소리가 크다.'라는 말이 있다. 파도소리 때문에 음성을 전달할 때 큰 목소리를 사용해야 하니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목소리가 커야 하고, 그것이 몸에 배어 평균적인 사람의 소리보다 커다란 걸 표현한 말이겠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만큼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환경이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그런 환경이 마치 '팁'과 같다고 생각했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냥 강한 팁을 사용하는 것도,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냥 날카로운 팁을 사용하는 것도 종국엔 더 나쁘니까. 처음부터 좋은 선반 장비, 좋은 바이트, 좋은 팁. 더 나가면 장비가 놓인 지면의 진동 흡수 정도, 실내의 온도, 습도까지 최적의 환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간사 그런 환경이 흔히 가능할 리 없다.
지인 중에 음식점으로 시에서 유명할 정도로 재산을 축척한 분이 있다. 물질적으로 많은 걸 가졌음에도 자식 걱정을 한시도 놓지 못하시는데, 주변 사람이 모두 알 정도로 아들이 망나니인 이유다. 서른 후반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새벽부터 준비하는 음식점에 전날 마신 술 때문에 10시는 넘어야 나오고,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갑질 하고, 아버지 지인들이 방문했음에도 눈치 주며 인사 한마디 없고, 외제차가 없어서 여자 친구가 안 생긴다며 투정 부리는, 애라서 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애라고 불리는 그런 사람이다. 부모님이 정신 좀 차리라고 하면 어렸을 때 왜 본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냐며, 나가서 일 하느라 본인 신경은 써본 적 있느냐고 대꾸까지 하는 사람이다. 누가 봐도 남 탓이지 않은가. 만약 그 환경을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예를 들어 자신을 돌봐주시진 못했어도 꾸준히 본인의 업에 정진하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했다면 다르지 않겠는가.
대다수의 인간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팁의 날카로움을 잘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공부에 몰두하면서, 업에 정진하면서, 친구와의 어울림으로. 무척 날카롭게 매진할 때도 있고, 무듸게 어슬렁 넘기기도 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필요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면 거칠게 깎아내고, 중요한 부분은 매끄럽게, 더 중요한 부분은 자신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매끈하게 깎아내면서 다듬는다.
'다이아몬드 핸드랩'은 칫솔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칫솔의 솔 대신 인공 다이아몬드 숫돌이 부착되어 있다. 이 다이아몬드 핸드랩이 바로 팁의 날카로움을 결정하는 도구다. 다이아몬드 숫돌은 칼을 갈 때도 사용되는 소재로 금속면을 갈아내어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 저렴한 칫솔 한 세트 사는 정도의 가격인 이 도구가 선반 가공물의 최종 표면을 담당한다. 사람이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환경이 큰 역할을 함에는 분명하지만, 결과물을 결정하는 건 아주 작은 마음가짐일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나와 같이 놀아주지는 못하셨지만, 그것보다 본업에 집중한 모습을 받아들였다면 팁은 마음을 더 매끄럽게 가공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앙금이 설사 남아있었더라도, 적어도 남 탓을 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마음 깊은 곳엔 욕심과 비열함이 솟음치는 인간일 뿐이다. 성장하고 싶어서 고민했고, 그런 이유로 선반 가공을 했던 어린 시절 경험에 인생관을 비춰보았다. 살아내야 하는 당장의 순간들을 아주 작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것이 인생을 만드는 일이라서. 그 순간순간의 결정을 날카롭게 혹은 부드럽게 선택하는 일이 마치 팁을 다듬는 것과 같아서.
기계가공
손다듬질 또는 손가락 가공에 의하지 않고 기계를 사용하여 가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