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자아와 글쓰기
횡단보도를 건너려 기다리는 시간조차 스마트폰으로 메우는 사람들, 찰나의 '틈'도 허용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틈’을 그냥 비워둘 수는 없을까?
‘틈’은 시간 개념으로 보자면 집과 회사의 출근 사이,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과 같이 무엇과 무엇이 행해지는 경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넓게 확장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 생각의 차이를 의미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틈’을 어떻게든 메우려 안간힘을 씁니다. 벌어지면 불확실한 공간이 되고, 좁히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경계선이 되니까요. 너무 벌어진 관계는 침묵과 고독을 만들고, 좁히려다 되려 갈등과 오해를 부르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처럼 말이에요.
굳이 메울 필요가 있을까?
18년도 무렵, 오히려 틈을 그대로 놔둬도 되지 않나?라는 고민을 시작했고, 단어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다양한 관점으로 고민하곤 했지요.
20년도 글쓰기 모임이 네 번째 시즌에 접어들 때였습니다. 어떤 목표를 만들어 달성해 보고 싶었고, 대중적인 소비가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람들과 전시회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틈'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활용하게 됐죠.
전시 작품 제작은, A작가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 B 작가는 A작가의 사진만 보고 떠 오르는 감정을 글로 작성한 후 글에 대한 감정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릴레이 방식의 글쓰기였습니다. 작품 제작에서 중요한 건, 이전 작가의 작품 중 오롯이 사진만 봐야한다는 점 입니다. (포스터에는 글과 사진을 본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사진만 보고 수행했습니다.) 작품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작품과 작품사이 관점의 차이를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시회의 핵심 요소였죠.
‘틈’이란 글쓴이와 글쓴이 사이 생각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이전 사람이 촬영한 사진을 보고 다음 사람이 작품을 만들 때 다음 작가가 이전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즉, ‘틈’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태여 ‘틈’을 줄이지 않고 완벽히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봄으로써 남과 나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더 알아가고자 했습니다.
작품 감상의 묘미는 앞사람과 뒷사람의 차이를 느끼는 데 있습니다. 영감을 주는 매개체는 오직 사진이었고, 글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 시기에 공개됐기에 동일한 사진으로 작성된 글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발견하는 재미입니다.
전시회 소개 문구 (온라인 전시장: https://nightshare.tistory.com/143)
코로나 시기였던 터라, 전시회 준비, 진행 과정 동안 그리고 심지어 전시회 날 조차 모일 수 없었다는 게 가장 아쉽습니다. 사실 전시회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사진과 영상 촬영이 고작이었죠. 그나마 시에서 지원해 주는 영상 인터뷰 프로그램이 있어서 위안이 되긴 했습니다.
모두 모이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은, 일정관리가 거의 업무 프로젝트 관리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릴레이 방식이었기에 앞사람 작품이 진행되지 못하면 뒷사람 일정이 딜레이 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9명이 두 작품씩 하려니 작품 준비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6개월 동안 매주 2회 정도 일정과 진행상황을 공유하면서 작가님들을 쥐어짰죠.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대부분 혼자 추진해야 했는데, 가끔은 그게 편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기획하고, 혼자 추진하는 게 속도 면에서는 훨씬 빠르고 마음 편하니까요. 무슨 일이든 의견 수렴이 제일 힘든 법 아니겠습니까.
릴레이 방식 글쓰기의 첫 번째 작품에는 당연히 앞선 사람의 사진이 없죠. 그래서 첫 작품은 전시회 자체의 주제인 '틈'을 제목으로 제작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당시 저는 '틈'을 경계의 움막이라 생각하곤 했습니다. 무엇과 무엇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그 공간에는 예측하지 못한 것들이 담겨 있기에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굳이 누가 그 공간의 정체를 알려준다고 해도 굳이 보지 안겠다고 했습니다. 그곳을 메우거나 좁히는 행위는 내게 창의성을 앗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했죠.
저의 두 번째 작품 순서는 10번째였습니다. 9번째 작품 사진의 바위에 낀 이끼와 식물을 보니,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올라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떠올랐습니다. 9번째 작품을 수행한 분은, 코로나 시절 답답하게 끼고 있던 마스크를 바위에 낀 이끼로 비유한 것인데 말입니다. 작품이 마무리된 후에 서로의 작품을 확인하면서, 사람과 사람 간 생각의 '틈'이 크리라곤 생각했습니다만 이건 다르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로 차이가 있어서 아직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지 말입니다.
첫 번째 작품에선 제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던졌고, 두 번째 들어서야 저도 '틈'에 완전히 들어서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9번째 작품의 사진을 보며, 순간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빠져들었고, 며칠 고민하며 과거의 내 경험과 감정을 떠올렸죠. 이윽고 글로 작성한 후엔 그 감정들을 사진으로 은유하기 위해 왜 그런 생각을 했고, 어디서 그런 감정을 느꼈었는지 스스로를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됐습니다.
뇌과학은 꽤 오랫동안 공부하던 중이었지만, 명상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4년 1월,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을 읽으며 명상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바로 세 가지 자아에 대한 개념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세 가지 자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에 그 경험에 함몰되는 '경험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과거를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기억자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것을 한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는 자아다. 이 세 번째 자아가 '배경자아'에 가장 가깝다.
내면소통, 김주환, 556
인간에게 자아가 하나가 아니라는 개념은 심리학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주장입니다. 기억자아와 경험자아는 대니얼 카너먼이 제안한 개념이며, 배경자아는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자아의 개수를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다중자아가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아를 3개로 구분하는 건 성찰적 측면에서 효과적인데요. 뇌과학적으로도 근거를 가집니다. 자아 성찰의 뇌과학적 해석에 관해서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에 대해 검색해 보시면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자아에 대해 다시 설명하면,
경험자아: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 순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에 빠져 있는 자아
기억자아: 과거를 떠올리며, 그 순간에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자아
배경자아: 경험과 기억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관찰’하는 자아
이 내용을 전시회의 경험에 대입해 보니, 글쓰기와 사진 찍기라는 활동이 세 자아의 역할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타인의 사진을 보고 순간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몰입하는 것 ⇒ '경험자아' 훈련 과정
며칠 동안 고민하며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떠올리며 글을 적는 것 ⇒ '기억자아' 훈련 과정
감정을 사진으로 은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 ⇒ '배경자아' 훈련 과정
물론, 자아의 역할을 이렇게 딱 맞춰 방정식처럼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대게의 창작 과정은 세 가지 자아 훈련을 포함하니까요. 이해를 위한 해석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받으며 마음 훈련을 수행했고, 작품 활동이 끝난 후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또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틈이란 비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억지로 메우려 하거나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그대로 둘 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자아 또한 그러지 않을까요. 스스로를 특정 상태로 고정시키거나, 인위적으로 조정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마음 훈련이라는 게 결국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질감을 줄여 스스로를 인정하는 과정이니까요.
19년도부터 9번의 글쓰기와 3번의 전시회를 진행했습니다. 벌써 추억이 됐네요. 23년부터 본업과 디제이 부업으로 바빠지면서 모임을 지속할 수 없게 됐습니다.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됐죠. 모임을 업그레이드해서 운영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습니다. 작년 말부터는 디지털 콘텐츠 분야도 도전 하는 중이라 이전보다 더 힘들어지긴 했습니다만,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글쓰기 모임은 추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서는 마음 훈련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데, 글쓰기는 읽기와 쓰기, 그리고 내가 왜 그런 글을 썼는지 돌아보는 과정까지 포함하게 되니 효과가 더 크겠죠. 저는 여기다 세 가지 자아를 이해하고 글쓰기를 하는 것이 효과가 더 클것이라 생각합니다. 더하여 마음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자체입니다. 글을 쓰며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다듬어 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훈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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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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