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갈등을 피하자고 미래를 낭비하지 말자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치 이야기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주제다.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 터부시되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암묵적 합의는 마치 사회적 예의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것이 되려 정치적 갈등을 고조시켰다고 생각한다. 일찌감찌 정치적 견해를 풀어놓고 이야기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합의, 합치라는 것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네거티브 전략에서 이것의 영향이 두드러진다고 본다. 골방에서 혐오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적어도 사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스피커가 큰 사람이나 세력의 말만 따르지 않고 되려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을 것이다. 스스로의 언행이 부끄럽지 않게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을 적은 것이니 반박해도 할 말은 없다. 유튜브에서 보고 들은 역사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론한 것이고 딱히 별도의 공부를 하진 않았으니 잘 판단하시길 바란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우리는 오히려 정치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했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다. 광대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인데, 온 마을 사람들을 모아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나랏일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겪게 됐고, 조선인들의 정치적 활동과 발언이 철저히 통제됐다.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상 정치이야기의 단절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겠으나 문제는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시기, 많은 친일 경력자들이 정부와 사회 주요 직책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마저 정치적 압력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과거를 추궁하는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이 생존의 문제였다.
친일파와 그들과 결탁한 기득권 세력들은 교묘한 전략을 구사했다. 냉전 논리를 활용해 친일파 청산 요구를 "좌파"라고 몰아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반공"이라는 명분 하에 정치적 비판 자체를 위험한 것으로 규정했다. 이후 군사정권 시대를 거치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들은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게 되었고, 이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정치적 결정을 독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질수록, 기득권층의 이익은 더욱 견고해졌다. 정치적 침묵은 그들에게는 최고의 방어막이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의 정치 기피 현상이 오로지 과거의 정치적 전략 때문만은 아닐 테다. 관계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 세대 간 정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 우려,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피로감 등 복잡하게 얽힌 요인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밑바탕에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정치적 탄압의 기억과 기득권층의 의도적 담론 통제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이러한 정치적 침묵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본질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자유로운 토론에 있다. 정치 이야기를 터부시 하는 문화는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약화시킨다. 우리 모두가 정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민들이 침묵할 때, 소수의 목소리만이 정치 과정에 반영된다.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고 경쟁할 때 더 나은 정책 대안들이 나올 수 있고, 시민들의 정치적 이해도도 높아진다.
물론 초기에는 불편함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오랫동안 억눌러온 정치적 견해들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다툼이나 혐오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은 존중한다"는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인격적, 도덕적 대립으로 확대하지 않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극단적 입장들이 중간지대에서 만날 기회도 생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사실을 확인해 보려는 행동이나 배경 지식을 학습하는 등의 활동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진화 시킬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혼란과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훨씬 클 것이다. 정치적 담론이 활성화되면 시민 의식이 높아지고, 정치인들의 책임감도 강화된다. 무엇보다 과거 기득권층이 구축한 정치적 독점 구조를 해체할 수 있다.
정치적 침묵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의 전략에 부응하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이제는 정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서로 다른 견해를 인정하면서도 활발히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정치적 담론의 회복은 단순히 이야기하는 자유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다음 세대에 무언가 남겨야 한다면, 기본은 먹고사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첫 번째는 자유롭게 견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닐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