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시계 사도 되니?

사치와 가치의 경계

by 감정수집


나 시계 사도 되니?


최근에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나 시계 비싼 거 사고 싶은데 사도 되는 거냐? 내가 진짜 돈도 잘 안 쓰고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요즘은 의혹이 없다. 그래서 비싼 거라도 하나 사야 하나 싶다.


그 친구의 과거를 자세히 안다긴 어렵지만 어떤 태도로 삶을 임했는지는 잘 알고 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확신이 있었고, 매번 시도했고, 실패에 좌절할 줄 모르는 친구였다. 그랬기에 그 친구의 말에 쉽게 답변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아마 물질적 풍요로움에 시달렸던 것이 친구를 슬럼프에 빠지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원하던 돈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니 그것에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이, 소위 말하는 벌고 나니 돈이 돈같이 안보인다는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엔 생각 없이 잤다. 그러고 다음날 출근하면서야 다시 되짚으며 생각해 보았는데, 당시에는 친구에게 "그래 고생했으니까 그거라도 하나 사라"라고 말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사" 한마디만 해야 할 것 같다. 통화 당시에는 별말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려 했다면 분명 잔소리였을 테니까. 그 친구, 내가 그 친구를 보아온 나날들을 생각하지 않고 전화 통화할 때 오직 그 상황을 어찌 말해보려 했었으니. 이미 그 친구도 내가 하려고 했던 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생각해 보고 전화했을 텐데 말이다.


물질로서 자신 내면에 의미를 찾아보려는 행동은 존재성의 이유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며 가치를 찾아가는 길이다. 물질을 탐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나 지식 습득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나 결국 삶의 목적을 갈구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니까. 단지 지식을 채워 나가는 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물질을 채워 나가는 행위는 남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기에 좋지 못한 시선을 받을 뿐이다. 그러니 물질을 탐하면서도 얼마든 정당성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정직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바른 청년이 일궈낸 물질적 풍요를 시샘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시계를 구입해도 된다. 그만한 재력이 있고 그것이 자신이 갈구하는 욕망이라면 채워야 한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인생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입한다는 행위에만 집착하여 진실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수집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 행위의 반복에는 정당하지 못하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수단이 동원될 수도 있고, 그 생활이 삶을 피폐해지게 만들 수도 있기에 행위를 함에 있어 자신의 정당성과 그것의 가치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는 있을 테다. 그것이 반드시 시계가 아닌 어떤 물질이라도.


단지 값비쌈을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제대로 된 가치를 바라보지 못하고 물질을 구입하는 거라면 가격의 허울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대 세상은 누구나 브랜드라는 허울에 빠져 산다. 그러니 다들 부려보는 사치를 나만 성인군자인 척 피할 필요도 없다. 지나치게 고상한 척하는 것도 손가락질받기 딱 좋은 태도니까, 결국 가치와 허울의 적절한 교차선을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때론 사치도 부려보는 것이 또 다른 시점을 주기도 한다.


요즘은 잘 나가는 기업가나 아티스트나 운동선수들이 고가의 자동차 혹은 어떤 고가의 물질을 수집하는 모습이 많이 비친다. 과거엔 방송으로 나오지도 못했을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우리가 인격적으로 많이 성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왜 친구가 올린 사진에는 아직도 그리 손가락질하는가 싶다.


이제야 다시 짚어보니 그 친구는 충분히 오판에 빠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몇 백, 몇 천, 몇 억 짜리 시계를 구입하더라도 물질을 탐하는 사치 행위로 자신의 존재성을 만들어 나갈 친구는 아니니 말이다. 충분히 고가의 제품을 이용하는 자로써의 가치를 성립시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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