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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Jan 14. 2019

[영화 에세이]#10. 더 랍스터(1)

별, 불나방 그리고 우리들 -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

별, 불나방 그리고 우리들 -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



 한없이 어두운 여름날 밤. 까마득한 밤하늘에 사춘기의 여드름처럼 별이 박혀있던 날이었습니다. 아직 깊은 웅덩이에 별이 남아있던 시절, 내가 별을 사랑하던 시절. 나는 별들 사이에 비행기가 섞여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별들은 가엽고 비행기는 미웠습니다. 별도 아닌 주제에 그 틈바구니에 섞여 들어 제일 반짝이고 있다니. 기실 그리 빛나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말입니다. 비행기는 수치였고 모욕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밤하늘에 별보다 빛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곱게 얼굴을 닦았습니다. 반짝이는 것을 닮고 싶었기 때문에. 뽀드득뽀드득 문질러 염원을 담았습니다. 허나 어느 날 문득 가까이서 거울을 바라보니 썩 빛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사춘기의 여드름 자국만 잔뜩 했습니다. 별을 사랑한 나머지 별처럼 되고 싶었는데 그만 비행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분하였습니다. 너무도 분한 나머지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나는 밤하늘 진득한 검은 공기를 뭉쳐 총 한 자루를 손에 쥐었습니다. 난생처음 쥐어본 총에 손을 벌벌 떨면서 총구를 관자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허나 손금 사이로 땀만 삐질 삐질 흘리다 총을 관자에 겨누지 못하고 결국 밤하늘을 향해 쏩니다. 탕탕탕.

 총 맞은 달은 산산조각이 되어 별가루로 흩어졌습니다. 온통 환한 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곤 나는 불나방이 되어 별빛 속으로 뛰어 들어 환하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더 랍스터>(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항 구조의 세계이다. 솔로가 된 이들은 호텔로 초대되며 45일간 새로운 사랑을 구할 수 있다. 숲에 있는 사람들을 사냥을 하면 1명당 1일 호텔에 머무를 수 있는 날이 연장되고 날짜를 모두 소진한 사람은 동물이 되고 만다. 이처럼 호텔은 사랑을 하기 위한 사람들 - 사랑을 하라고 등 떠밀린 사람들 - 을 위한 공간이다. 반면 숲은 랑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공간. 이곳에서의 사랑은 엄벌의 대상이다. 혼자 노래를 들으며 혼자 춤을 추며,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입을 찢어놓을 정도이니. 영화는 작위적으로 두 공간 사이에 선을 긋는다.      


 극단적으로 양분된 세계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함유한다. A와 B라는 두 극단을 잇는 선을 상상해보자. A와 B사이에 있는 수많은 선 위의 점을 A 혹은 B의 위치에서 바라본다고 하면, A와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점(1)은 A에서 보면 B와 겹쳐 보일 것이고 B와 비교적 가까운 점(2)도 B의 위치에서 보면 A와 중첩될 것이다. 영화가 구축한 세계는 A의 규칙을 꽤나 성실히 이행하였음에도 B처럼 이해되며, B에 몸담아도 A처럼 몰리는 극단으로 치우친 세계이다. 이는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호텔에서 데이비드가 춤을 권하러 나서는 슬로우모션 장면은 감미로운 장면으로 묘사되어야 마땅할 터인데 긴박한 음악이 흐른다. 반면 숲의 사람들을 사냥하는 장면은 긴박한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느리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이외에도 하나는 둘보다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한쪽 팔을 구속하거나, 목에 음식이 걸렸을 때 하임리히 매뉴버를 시행해 줄 사람이 있다는 점을 커플의 장점으로 선전하지만 데이비드는 비정한 여자가 숨 막혀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기에 커플이 되는 등 이 세계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영화 <더 랍스터>| 슬로우 모션으로 비춘 호텔과 숲의 모습은 배경음악과 결합하면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관통하는 음악은 베토벤의 'String quartet in F major Op. 18, No.1 2, adagio affettuoso ed appasionato'이다. 베토벤의 친구 Karl Amenda에 따르면 이 부분(second segment)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더 랍스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구조를 담습 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랍스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로미오는 몬테규 가(家), 줄리엣은 캐퓰렛 가(家)라는 서로 반목하는 가문에 속해있다.(*) 이 연인은 두 가문을 떠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줄리엣은 약을 먹어 가사상태에 빠지고, 이를 본 로미오는 자살을 하며, 깨어난 줄리엣은 죽은 로미오를 보고 자살을 한다. 이들의 사랑은 즉흥적이고 유약한 사랑이 아니다. 이들은 운명적 존재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유의지의 소유자이며, 이들의 사랑은 자기와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행해지는 자기 인식의 결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회적 요구를 거부하면서 주체성을 확보하며 자기 성장을 이룬다.


* 이 두 가문은 교회당과 황제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념 차이를 보이며 대립한다.
*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반사회적 행위에서 출발하는 상호인식의 사랑법>(2014, 이용은)
<극적 아이러니로 구현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성>(2012, 이영순)


 잠시 랍스터라는 동물을 살펴보자. 랍스터는 주인공의 말마따나 오래 사는 동물이다. 흔히 랍스터는 불로장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불로불사와는 다른 개념인데, 바닷가재가 죽음을 맞이하는 이유가 인간과 전혀 다르기 때문. 랍스터는 죽을 때까지 탈피를 하며 성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힘도 세지고 껍질도 단단해진다. 허나 이는 탈피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결국 탈피를 하지 못한 랍스터의 낡고 망가진 외피로 세균 등이 침투하여 개체는 죽음을 맞이한다.


 숲과 호텔은 이념 차이에 따른 대립 집단이다. 호텔에서 온 데이비드는 숲에서 근시인 여자를 만난다. 그들은 숲과 호텔을 모두 등진다. 집단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근시인 여자는 눈이 멀게 된다. 이에 데이비드는 스스로 눈을 멀게 할 것인지 갈등을 하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구조를 따라온 <더 랍스터>는 이 지점에서 중단된 채 막을 내린다. 이후 데이비드가 눈을 찔렀는지, 눈이 먼 근시인 여자가 눈을 뜨게 되는지, 혹은 다시 자살을 하는지 등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영화가 막 내리는 지점은 데이비드가 성장의 시간을 마주할 때이다. 이는 도로를 따라 도망치는 장면에서 바지가 꽉 끼어서 빨리 걸을 수가 없다고 하는 데이비드의 발화로 드러난다. 바지가 꽉 끼는 것은 탈피해야 할 순간이 도달했음은유한다. 데이비드가 탈피에 성공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자기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터. 허나 영화는 데이비드의 탈피 여부를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더 랍스터>| 데이비드는 성장의 순간을 향하고 있다.

 다시 영화가 구축한 세계로 돌아가 보자. 호텔은 없는 감정을 만들어내야 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자위는 금지된다. 자위를 한 자는 토스트기에 손을 넣은 채 처벌을 받는다. 한편  메이드는 엉덩이를 페니스에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서 남성의 성욕을 들끓게 만들며,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통해 커플의 장점을 선전한다. 이 세 씬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아님에도 과도한 교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이 장면들을 씨실과 날실로 하여 호텔의 폭력적인 모습을 구축한.


 호텔은 외부 물건의 반입을 금지한다. 하나 반입 가능한 것이 있다면 등에 바르는 연고이다. 데이비드는 매일 아침 등을 어루만지며 연고를 바른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이를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고는 그에게 내재된 무언가, 혹은 다른 이들도 지니고 있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연고의 치유적 속성과 결부시켜서 생각해보았을 때 연고는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연고를 바르는 행위는 스크린 상에서 이미지화되며 의미를 전달한다. 홀로 연고를 바르는 모습은 무언가를 껴안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보이며 포옹의 행위를 상기시키나 그 품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영화 포스터의 포옹처럼 공허하게 남겨진다. 홀로 어루만지는 사랑은 공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비정한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도 키스를 하지 못한다(*)


* 통상 섹스는 절대적으로 육체적 사랑을 내포하는 반면 키스는 조금 더 정서적인 교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례로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에서 창부들은 헤프게 섹스를 하나 키스만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 <더 랍스터>
영화 <더 랍스터>| 근시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홀로 연고를 바른다.


 반면 숲은 감정을 감춰야 하는 공간. 호텔에서의 춤과 사뭇 다르게 숲의 사람들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며 혼자 춤을 춘다. 이곳에서는 키스와 섹스가 금지된다. 키스를 하면 레드 키스(red kiss), 섹스를 하면 핏빛 관계(red intercourse)라는 형벌을 받는다. 이토록 이곳에서의 사랑은 위험하다.(*) 허나 데이비드와 근시인 여자는 등에 연고를 발라주같이 춤을 추고 키스를 하며 사랑에 빠진다. 이들이 숨지 않고 사랑을 표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도시뿐. 이들은 부부를 연기하면서 격하게 사랑을 표한다.


* 몸짓으로 소통을 할 때, 'I love you more than anything in the world.'와 'Watch out. we are in danger.'가 헷갈린다고 하는 것을 통해 사랑의 위험성은 언어적으로 드러난다.
영화 <더 랍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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