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지나간 자리에 이토록 시린 여름이 오면
봄날이 지나간 자리에 이토록 시린 여름이 오면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텔레비전 광고로만 보던 교복을, 온통 같은 디자인인데도 이리저리 골라가며, 난생처음 매보는 넥타이를 죄어 매고 마치 어른이 된 양 학교로 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니 나름 머리도 조금은 굵어진 것 같고 머리도 빡빡 깎으니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 싶기도 했지요.
나름 치열하게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매양 발끝, 고 앞만 바라보며 걷던 어느 하굣길에 아파트 후문 놀이터 근처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 손 뼘만 한 하늘만을 남겨놓고 시야는 온통 벚꽃으로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인기척도 없이 성큼 다가온 그날의 봄은 아마 제가 기억하는 가장 화사한 봄날일 겁니다.
그 후로 열 번이 넘는 봄을 보냈습니다. 봄, 봄, 봄. 네 계절 중 혼자만 한 글자인 봄. 그래서인지 시나브로 찾아와서 잽싸게 도망가는 봄. 겨울 냄새가 옅어지고 봄 향기가 한 줌씩 들어서는 공기에 설레지만, 들떠서 아이마냥 웃으며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다가와있었지요. 봄은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쉬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비록 봄을 잡을 수는 없다 해도 봄과 같은 사랑을 잡으려 한 적은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번져온 줄도 몰랐는데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가슴 깊숙이 진하게 물들어 있던, 봄처럼 다가왔던 사랑을. 그 사랑은 쉽게 잡히지 않는 사랑이었지만 쉽게 내려놓지도 못하였습니다.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찾아오고 또다시 겨울이 가는 동안 이따금씩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그대 생각 남몰래 흩날리면서 하릴없이 소복한 세상을 헤매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벚꽃이 소나기에 떨어지던 날.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그 사랑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봄날은 간다>(2001, 허진호)는 로맨스 영화이다. 분명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얼핏 보면 매우 관습적인 서사를 따르는 듯하기도 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관습적이진 않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상우의 사랑을 담지도, 은수의 사랑을 은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서브플롯으로 주어진 상우의 할머니를 비춘다. 어디론가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그 뒤를 쫓는 상우. 그리곤 기차역에 앉아 떠나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 상우의 모습으로 오프닝 시퀀스는 끝맺는다.
이처럼 오프닝 시퀀스에서 서브플롯을 강조한 것으로부터 엿볼 수 있듯 <봄날은 간다>에서 서브플롯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부터 인물이 행하는 행동의 레퍼런스가 되기도 하고 인물들의 심경을 대신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상우와 은수의 메인 플롯은 때때로 서브플롯에 자문을 구한다.
영화가 시작하는 배경은 겨울. 아무런 기교 없는 담백한 자막으로 제목이 등장한 후, 소복하게도 눈이 쌓인 마당을 나서는 상우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상우는 아이처럼 눈을 밟으며 길을 나선다. 그가 향한 곳은 버스터미널. 상우는 그곳에서 은수를 만난다. PD 겸 아나운서인 은수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상우는 자연을 찾아다니며 소리를 녹음한다.
대나무 숲 소리 녹음을 마치고 은수는 그곳에 사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언제 대나무 숲 소리가 제일 좋으세요. 그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눈보라 칠 때가 좋지.' 겨울은 제아무리 추워도 봄이 다가올 것을 알기에 포근하다. 상우와 은수는 그들에게도 봄이 올 것이란 걸 아는지 종이에 베인 손을 번쩍 든 채로 손을 흔든다. 다가오는 봄을 반기듯이.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소소한 일들도 근사한 일이 되고 그런 근사함을 핑계로 전화를 하고픈 것이 사랑인지라. 은수는 상우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한다. 여기는 비가 온다고. 상우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답하나 이어지는 쇼트는 비 내리는 풍경 속에 있는 상우의 모습. 이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비를 맞는다.
비는 만나서 눈이 된다. 각각 비를 품던 남녀는 같은 공간에서 눈을 맞이한다. 소리가 새어 나지 않게 살포시 걸으며 서로의 곁에 앉는다. 이렇게 둘은 사랑에 빠진다. 허진호 감독은 작은 스킨십으로 큰 울림을 주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은수를 데려다준 후 무슨 말이나 행동을 건네야 할 상우가 기껏 청한 것은 악수. 이처럼 순수한 청년이 어디 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할 수 있겠나, 키스를 할 수 있겠나. 그저 악수를 청하는 것 밖에는. 숙맥 같은 남자가 어찌나 답답했던지 차문을 닫고 나간 은수는 다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라면 먹을래요?'
조금 더 친해지면 하자는 은수의 말에 다음 장면은 부끄러운 나머지 뜀박질하는 상우. 허나 이내 벗은 채 누워있는 두 남녀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그들이 드디어 사랑을 나누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봄이 왔다. 상우는 은수가 보고 싶어서 단숨에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가기도 할 정도. 허나 이때 영화 서브플롯으로 눈길을 튼다. 상우의 집 마당에는 꽃이 피었고 담밖에는 진달래가 화사하다. 상우는 꽃에 물을 주고 할머니는 노래를 부른다. 봄이 왔으니 흥얼거릴 만도 하겠건만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봄날은 간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이 노래는 상우의 사랑에 복선을 깐다.
* 허진호 감독의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환갑잔치에서 그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제목을 먼저 정해놓은 채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을 맹세했지만 떠나간 님에 대한 가사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인물을 비출 때 화면을 분할한다. 화면의 한쪽을 상우에게 반대쪽을 은수에게 제공하여 둘은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고로 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가상의 경계선이 그려지는데 봄이라는 계절에 이르러서는 경계선이 무너진다. 상우와 은수는 한쪽에 여백을 둔 채 서있기도 하며 둘이 겹쳐 앉기도 한다. 허나 봄이란 계절은 이토록 순간의 계절이던가. 십여 분 만에 봄은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온다. 상우와 은수는 반팔을 입고 배경에는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은수는 쌀쌀맞아지고 인물들 사이에는 다시금 경계선이 그려진다.
* 상우와 은수는 각자의 이유로 술에 취하고 각자의 상황에서 쪽팔린다는 말을 뱉는다. 서사에 있어서도 둘의 모습은 닮은 듯 닮지 않으며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영화는 다시 서브플롯으로 눈을 돌린다. 할아버지의 내연녀였던 사람이 할머니를 찾아온 것. 할머니는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못한다. 상우 역시 마찬가지. 은수에게 접근한 남자에게 한마디 고함치지도 못한 채 그저 자동차 문을 긁는다. 상우는 아직 은수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상우의 짐을 싸놓은 채 잠든 척한 은수를 뒤로하고 서울로 떠나버렸음에도, 그는 보고 싶었냐는 은수의 질문에 그저 묵묵히 끄덕일 뿐. 그런 상우는 변해버린 은수가 원망스러워 술에 취한 채로 찾아간다. 허나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 술에 취했던 은수를 위로해주던 상우의 모습과는 달리 은수는 술에 취한 상우에게 차갑게 대한다. 은수는 상우에게 이별을 고하고 상우는 반문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는 다시금 상우의 할머니를 비춘다.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했던 기차역에 상우와 할머니는 나란히 앉아있다. 이제 가요, 할머니. 상우의 어르는 말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랑 같이 가야지.' 할머니가 그토록 기차역을 찾아온 이유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것이었다. 이제 여기 없어요, 정신 좀 차리세요. 그 말을 듣고 상우는 울먹이며 외친다. 마치 보내는 일에 미숙한 자기 자신에게 소리치듯이. 힘껏 울분을 토하며.
다시 비는 내리고 눈이 온다. 아무리 슬픈 이별 뒤라도 계절은 흘러가고 봄은 다시 온다. 개나리 핀 담장이 보이는 마루에 걸터앉은 상우는 할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흐느끼고 할머니는 그런 상우를 위로해준다.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말을 마치고 할머니는 고이 간직해온 연분홍색 치마를 꺼내 입는다. 마치 노랫말처럼 차려입고는 곱게 떠나간다. 아마도 드디어 떠나갈 채비를 마친 것일 테다.
상우 역시 할머니처럼 준비가 되었다. 완연한 봄이 찾아오자 종이에 베인 손을 흔들며 인사하듯 찾아온 은수. 상우는 은수를 마주한다. 오늘 같이 있자는 은수의 말에 할머니를 드리라고 건네받은 화분을 돌려준다. 할머니는 떠났고, 할머니가 보내주는 법을 이해했듯이, 상우도 이제는 보내는 법을 안다. 처음과 사뭇 다른 악수를 하고는, 입술을 깨물고 뒤를 돌아보긴 하지만, 그저 손인사만으로 은수를 보낸다.(*)
* 허진호 감독은 원래 이 장면을 돌아보지 않는 것으로 촬영하려 했다. 하지만 상우에 몰입한 유지태가 '저는 돌아봐야겠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돌아보는 장면이 있는 씬으로 찍게 되었다.
<봄날은 간다>는 봄이 따스하기보다 여름이 시린 영화이다. 따스한 봄은 제 향기가 흩날릴 새도 없이 사라지며, 때 이르게 찾아온 여름의 무더위는 버겁다. 허나 봄날이 간 후에 여름이 오듯, 여름날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도 당연한 일. 무더운 여름날도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고 가을은 어느새 성큼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상우는 홀로 갈대밭에서 소리를 듣는다. 상우는 이제 보내는 법을 알기에 조금 더 여물어간다. 떠나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보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기에.
하지만 <봄날은 간다>가 비록 찬란한 봄보다 시린 여름을 다루었다 해도 뭉근히 떠오르는 장면은 십분 남짓한 봄날의 여운이다. 영화를 다시 떠올려보면서 봄날을 추억하는 것처럼, 유지태가 벚꽃 아래에서 뒤돌아보려 했듯이, 나 역시도 사랑을 보낼 때면 뒤돌아보지 않을까.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있더라도,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이 꽃답게 죽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변주해본다. 그래요, 나는 아직 미련 없이 성숙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지만 서도
떠나가는 뒷모습은 얼마나 시린가.
분분한 낙화……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한때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입술을 깨문다.
나의 사랑, 나의 결별
뿌리에 물 머금듯 울컥 차오르는
손에 쥔 슬픈 화분 하나.
- 이형기의 <낙화>를 변주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