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스스로의 죽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거나, 죽을 만큼 아프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죽음. 서서히 옥죄어오는 죽음 말이다. 나는 매일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나는 기꺼이 죽음을 즐기기도 한다. 무슨 말인가 하니 나는 끽연을 애정 한다는 말이다.
예술가라면 무릇 담배 정도는 피워줘야지. 기실 스스로를 그다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예술가라고 쳐도 농담이 팔 할은 섞인 말이지만 때로는 머리를 비우고 감정을 가다듬는 데엔 담배만한 것이 없다. 한 모금 짙게 빨아들이고 내뱉으면 흉부의 응어리도 박박 긁혀 내뱉어진다. 하나둘씩 그렇게 비워 내다 보면 어느새 매캐한 심상이 떠오르곤 한다.
지난날 어느 무기력한 밤도 그랬다. 비록 아직 젊지만서도 열정을 잃은 채 백발이 되어가던 날 밤. 칠흑같이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불빛 하나를 보았다. 내 호흡에 장단 맞춰 잠깐씩 피어오르는 담배 불빛. 하얗게 재로 뒤덮여있지만 깊게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속에 명멸하는 붉은 것은 꺼질 듯 꺼지지 않고 고스란했다. 마치 내 숨결에 어울려 춤을 추는 듯이, 성난 황소를 안내하는 붉은 천처럼 휘날리며.
파올로 소렌티노는 <그레이트 뷰티>에서 일생일대의 아름다움에 대해 고찰했다. 유명 소설 작가인 젭은 젊은 날의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이는 천장에 일렁이는 파도로 이미지화된다. 젊음,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 이것이 우리가 일생을 바쳐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허나 <그레이트 뷰티>는 그런 아름다움들이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젊음은 순간이고 순간은 연기처럼 흩어질 뿐. 마치 코끼리를 숨기는 마법처럼, 한때 피고 지는 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젊음이란 스쳐 지나가는 열흘 붉은 꽃에 불과한 것일까. <유스>(2015, 파올로 소렌티노)는 이 지점에 서서 젊음을 되돌아본다. 은퇴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프레드 벨린저는 여왕의 특사에게 '심플 송'을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무려 기사 작위와 함께.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거절하지만 탁자 밑에서 붉은 사탕 종이를 부스럭댄다. 붉은 종이는 열망이요, 미련이다. 그는 숲 속에서 자연을 지휘하는 것으로 열망을 달랜다.
<유스>에서 열망은 붉은색으로 이미지화된다. 궁전과도 같은 꿈속의 공간에서 프레드는 미스 유니버스를 마주한다. 좁은 길을 지나치기 위해 비껴서다가 문득 가슴이 스칠 때 그녀의 옷은 순간 붉게 빛난다. 허나 그녀가 지나가고 나면 이내 물이 차올라 궁전을 집어삼키고 그를 질식시킨다. 프레드는 그의 아내의 이름, 멜라니를 외치며 꿈에서 깨어나 호텔로 복귀한다. 그가 '심플 송'을 지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멜라니 때문. '심플 송'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곡이고 오직 그녀만이 부를 수 있다. 허나 이러한 구속은 프레드를 짓누르고 질식시킨다.(*)
* 각본에서는 Fred tries to hurry, but he’s old and the water tugs at his legs. He turns and cries out in a suffocated voice, as if begging Miss Universe for help.라고 묘사되어있다. 허나 Miss Universe를 얻는 것으로는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호텔은 수면 아래의 공간이자 질식된 공간이다. 또한 정체된 공간이자 실존이 구속된 공간이다.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열망을 저지하는 어떠한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이곳에 머무른다. 사우나, 마사지, 수영 등의 회복의 이미지가 제시된 후, 늙음을 상징하는 백색의 공간에서 'YOUTH'라는 자막과 함께 적색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장면은 호텔의 이러한 성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편 팔루스(phallus)는 페니스(penis)로도 나타난다.(*) 팔루스의 거세는 핍뇨 증상으로 신체화된다. 온전히 배출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기에 생기는 문제. 이 문제는 열망의 상실로 일어난 것이므로 후에 언급되듯 노화로 인한 전립선의 문제가 아니다.
*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에서 여성은 욕망의 대상이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길다 블랙과 동침을 했느냐를 논하고 Miss Universe를 훔쳐보는 프레드와 믹의 모습은 <그레이트 뷰티>에서의 첫사랑과 비슷하다. 즉, 허구적 열망이자 과거 지향적 열망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참된 열망을 배출할 수 없다.
프레드의 지휘가 멜라니에 의해 억제당하고 있다면, 그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믹 보일은 자신의 마지막 영화를 만드는 일에서 정체를 겪는다. 그는 오십 년이 넘도록 영화를 만들어왔으나 그의 영화는 점점 시들어간다. 그럼에도 그는 영화 만드는 일을 중단하지 못한다. 한편 그는 브렌다라는 자신의 페르소나 격인 배우에게 집착한다. 각본에는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삭제된 장면을 살펴보면 믹은 브렌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투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MICK BOYLE: Mommy.
All the other actresses fall silent, leaving the stage to this last actress. 99. It’s Brenda Morel, in costume: a cheap, ugly dressing gown, decrepit, a pale shadow of her former beauty. She recites in a neutral voice.
BRENDA: You were so cute when you were little, my boy. But what’s so disgraceful is that you’re still cute. A cute, useless man.
Mick’s eyes are shining. The silence of the empty field. There’s no one there. The vision is over.
영화배우인 지미 트리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프레드가 그에게 무엇을 그리워하냐고 묻자 그는 노발리스의 'Hymns to the night'에 나온 구절을 읊는다. 'I'm always going home, always going to my father's house.' 그는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아마도 그에게 아버지는 불완전한 존재인 듯하다. 골동품점에서 그의 영화를 봤다던 한 소녀에게 지미 트리는 무심하게 미스터 Q를 보았냐고 되묻지만 소녀가 본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 속 아들은 14살이 되고서야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어 이렇게 묻는다. "Why weren't you a father to me?" 아버지 역을 맡은 지미는 "I didn't think I was up to it."라고 답한다. 이에 소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무도 아버지라는 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회복의 순간은 허상이라고 믿었던 것이 실체화되면서 다가온다. 프레드와 믹이 산책하는 장면에서 믹은 자신의 삶에서 자전거를 처음 탔던 순간만 기억난다고 한다. 이에 프레드는 자전거 타는 일을 다음처럼 묘사한다. 'You learn to do something, you’re really happy, and then you forget to brake.'(*) 이때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한 인생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앞바퀴를 든 채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아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 한편 마라도나를 닮은 전 축구선수는 목발을 내려놓은 채로 테니스공을 하늘 높이 차올린다. 프레드는 공중부양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며 승려를 조롱했지만, 승려는 공중부양에 성공하게 된다.
* 각본에서는 이 장면에서 인생에 관한 훌륭한 메타포라고 감탄하는 대사가 있다.
* 각본에서는 Then something amazing happens라고 묘사하고 있다.
극복의 방법은 지미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던 지미는 소녀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낸다. 그는 히틀러 역을 연기하기 위해 호텔의 온갖 사람들을 관찰해왔다. 그가 내린 결론은 '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 공포와 욕망 사이에서 그는 욕망을 택했다. 히틀러를 연기한다는 막연한 공포감에서부터 눈을 뜬 그는 히틀러를 재현하면서 공포를 극복했다. 허나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히틀러를 연기하겠다는 욕망은 그의 것이 아니다. 믹의 욕망 또한 아니다. 지미는 히틀러를 연기하는 것을 포기하며 믹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에 대해 말하자고 한다. 아주 순수하고, 불가능하고, 부도덕한, 하지만 삶의 근원이 되는 욕망.
프레드와 믹이 목욕을 즐기는 중 한 나체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Miss Universe. 로봇 영화를 좋아하던 여자는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각본에는 'utmost elegance and femininity'라고 묘사될 정도. 허나 그들의 앞에 소환된 젊음의 아름다움은 그들이 취할 수 없는 것. 그들에게 그녀는 성적 욕망의 대상일 뿐이고 성적 욕망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들은 성적 욕망으로 대변되는 젊음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열망을 가로막는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 FRED BALLINGER: Anyway, she’s not interested, Mick, She’s interested in a body that corresponds to hers. Sex is like music, it wants harmony. And rightly so. We’re no longer in any condition to harmonize with anyone, Mick.
프레드와 믹은 아직 살아있음에도 죽음을 준비한다. 그들은 상실과 상실을 상기시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믹은 영화 내내 브렌다를 만족시키기 위해 마지막 대사를 고민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영화가 시시하다는 것을, 브렌다가 자신과 함께하지 않을 것을 은연중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고하자 그는 그녀 없이 영화를 찍겠다고 한다. 허나 그는 브렌다만이 자신의 디바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 없이는 영화를 찍을 수 없다.
믹은 길다 블랙과 손을 잡고 걸은, 일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기억하는 행위를 창녀와 함께 재현한다. 그리곤 다른 영화를 찍겠다는 유언과 함께 창밖으로 투신하여 자살한다. 이는 위대한 선언이다. 자신의 영화가 한계에 부닥쳤을 때 자기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영화적 죽음을 맞이하는, 허나 그로써 삶의 소중한 기억을 소환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영화로 만드는 선언. 그의 투신은 영화를 완성시키고 죽음을 스스로의 손으로 이룩하는 선명한 실존적 투신이다. 그의 진정한 욕망은 이렇게 성취되고 소멸된다. 감정은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에.
프레드는 10년 동안 멜라니에게 꽃 한 번 가져다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를 마주하면 그녀가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 눈부신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역설적으로 멜라니 없는 현실을 시큰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프레드는 무심하고 감정에 무딘 척하나 마사지사의 손길에 들켰듯 그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다.
브렌다 없이 영화를 찍을 수 없는 믹처럼 멜라니 없이는 지휘할 수 없던 그는 멜라니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창밖만 바라보는 멜라니에게 심경을 털어놓는다. 사랑 앞에서 한없이 유약했었다고, 여전히 감사하다고,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심플 송'으로 서로를 떠올리고 있다고. 그는 병들어버린 멜라니를 목도하는 공포를 극복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할 차례다. 그의 일생은 고작 붉은 사탕 종이를 부스럭대는 것보다 대단했다.(*) 그러한 일생은 멜라니와 함께 한 '심플 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탈 때처럼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의 황홀함, 그것의 근원은 사랑이다. 과거는 멀리 있지만 미래는 가까이 있다. 그는 과거로부터 '심플 송'을 꺼내어 연주하기로 한다. 소년의 말마따나 그 노래가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알기에, 그 아름다움으로 언제나 멜라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심플 송'을 멜라니 아닌 이와 공연하는 것을 통해 프레드는 도망치지 않고 용감히 그녀를 추억할 수 있다.
* MICK BOYLE: The piece you’re playing with that candy wrapper. You’ve done a lot better than that in your lifetime.
언제 죽을지, 마지막은 어떨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러므로 노년이란 거창할 것 없이 평범한 것이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던 아직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물론 노년은 육체적인 젊음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욕망을 마주 보고 대담하게 욕망을 열망하는 행위.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살아있다.
반면 지난날의 나를 포함해 '젊어서 늙은 이'들은 거의 죽어있다. 허나 프레드와 믹도 열정을 품고 있는데, 하물며 '젊어서 늙은 이'라고 다르랴. 그들의 식어버린 열정은 하얗게 닳은 잿더미 가운데 온전할 터.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담배처럼 꺾으면 부러질 만큼 유약할 지라도 그들의 깊은 숨결에 숨겨둔 열망을 꺼트리지 않기를 바라며 위로를 건넨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 제임스 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