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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Nov 26. 2019

주광走光

주광走光



#1.

시인들은 무언가를 노래할 때 운율을 사용한다. 운율을 맞춘다는 것은 기실 그것들이 어떠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뜻일 터. 어느 새부터 나에겐 서울과 겨울이 그러했다.

서울은 밝은 곳이다. 형창설안螢窓雪案의 빛, 철야의 빛, 취한 자들의 빛이 있는 곳. 우리는 서울에서 밝은 곳을 찾으며 높은 곳에 올라갔다. 점점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려면. 그리하여 밝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나방뿐 아니라 사람 역시, 어쩌면 모든 생명은 주광성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것을 쫓는다. 어떠한 불빛이 정녕 반짝이는 불빛인지도 모르면서도. 나는 혹여 서울의 겨울빛이 아닌, 다른 불빛이 머무는 곳도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 연유에서였나, 이번 여행 내내 여러 도시를 다니며 매일같이 불빛을 바라보았다. 매번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낮은 곳을 내려다보면서.



#2.

밤의 빛은 지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상의 빛이 삼켜버린 빛들, 우리가 세우지 않은 빛들. 낮은 곳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빛이 있다. 땅의 빛을 모두 끄고 밤의 어둠을 켰을 때 비로소 가장 따스한 빛은 보이기 시작한다.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가 겨울을 몰아낼 모닥불 하나를 피워놓고 모여앉은 곳. 그들의 노래를 불러주고 우리의 노래를 알려주는 곳에는 겨울의 빛이 아닌 다른 빛이 있었다. 모닥불을 고스란히 받은 붉은빛의 얼굴과 그 얼굴들을 들어 바라본 하늘의 작은 빛들. 가장 밝은 것을 내려다보기 위해 가장 높은 곳을 오르는 것이 아닌 서로를 마주 보고 올려다봄에 겨울의 것이 아닌 다른 빛이 담겨있었다.

사막에도 겨울은 있었다. 허나 이곳에는 한 사람분의 머리카락에 여러 사람분의 따스한 별빛이 나린다. 뿐만 아니라 머물렀던 도시의 골목골목에도 모닥불이 있었다. 낯익은 공간의 시차를 바꾸어 이방인으로 피투被投되었을 때 낯설게 다가오는 친절들. 작게 건네는 말씨 하나하나에 온정이 묻어있었다. 어김없이 붉은 얼굴들이 있었다.

비록 이제 서울의 겨울로 돌아가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빛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쉬워 조금이나마 이렇게 담아본다. 털어내고 털어내도 묻어 나오는 사하라의 모래처럼 먼 훗날 작은 빛들이 손금 사이사이 묻어있기를. 기다란 역광이 드리운 빌딩 숲에 낮은 모닥 하나 불피울 수 있기를. 結.

- 사하라 사막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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