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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Aug 21. 2020

1. 의사 파업에 관하여

#1. 


의사는 공공재가 아니다. 공공재는 비경합성,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비배제성이란 시장의 가격 원리가 적용될 수 없고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속성을 이야기한다. 한편 비경합성은 소비하여도 다른 사람이 소비할 기회를 줄이지 않아 사람들이 소비를 위해 서로 경합할 필요가 없는 속성을 말한다. 의료는 위 두 가지 속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의사 유인수요의 존재나 정보의 비대칭성 등으로 완전한 시장원리에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에 따른 제약이 있기는 하나 우리를 공공재라고 볼 순 없다. 특히 '의료'가 아닌 '의사'를 그리 칭하기엔 더더욱.


#2.


그렇다면 의사는 무엇인가. 의사는 하나의 직업이다. 환자의 질환을 어루안는 것이 우리네 직무이며, 그 직무에 열을 다할 뿐, 그 누구도 명예와 희생을 강제할 순 없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직업에도 귀인은 있으며 아무리 고귀한 일로 보여도 악인은 존재한다. 의사에 대한 존경은 개개인을 향한 존경에서 그쳐야 하며 그들의 희생도 개인적인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


허나 실제로 병마를 어깨에 두른 환자들을 눈앞에 마주하였을 때, 그 누가 손 내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생 시절부터 끊임없이 직업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우리는 괜시리 어깨가 무거워지는 어떠한 사명감을 짊어진다.

의사가 된 지 몇 개월도 안된 내가 주치의 업무를 하던 달에, 응급실로 온 요관결석 환자가 패혈성 쇼크로 진행한 적이 있었다. 어찌어찌 아는 지식을 동원하고 옆에 계신 전공의 선생님을 붙잡고 여쭤보기도 하며 결국 가까스로 살려놓았음에도 한참을 그 환자 곁에 머물러있었다. 이튿날 아침엔 안도감과 감사함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한편 처음으로 사망선언을 하던 날에는 터무니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지독히 고독한 문장을 쉬이 내뱉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서린 행위인가. 사망자의 가족들은 나의 몇 마디 문장에 귀 기울이다, 내가 뱉은 문장에 마침표가 끝나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짓거나 오열하거나. 제각각의 방식으로 나의 사망선언을 가슴에 품었다.

뒤돌아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이 거울 없이도 눈에 아른거린다. 걸음걸음 멀어져 가는 그들의 곡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서울에 비해 터무니없이 맑은 공기가 문득 매캐하다.



#3.


이는 비단 나만이 겪은 감정은 아닐 테다. 의사로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들은 누구나 겪는 부담감이요, 상실감이요, 앞으로의 마음가짐일 테다.

당장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내는 일, 서서히 죽어가는 이들의 여생을 어루만지는 일, 삼키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이들을 돌보는 일. 어느 곳에 몸 담더라도 우리는 모두 병마를 머리에 이고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들이, 가운을 내려놓고 이야기합니다.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다수의 표가 아닌 스러져가는 이들을 위한 고민을 해주십시오. 우리들은 당신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진 공공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환자 곁에서 밤새우며 사람냄새가 한껏 배인 이들입니다.


그 사람들 곁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먼 훗날에도 사람냄새가 가운 자락에 묻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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