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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Aug 23. 2020

2. 의사 파업-밥그릇 투쟁

#1.

밥에 대하여. 밥을 먹는 일과 밥을 버는 일, 그리고 밥그릇 싸움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일컫는 밥에는 많은 무형적 가치가 있다. 일상적인 생활의 영위와 오랜만의 안부와 어릴 적 추억까지도. 한국인은 밥심이라 하였던가. 밥을 먹는 행위는 다시금 밥을 벌어오게 하고 밥을 벌어오는 행위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밥뿐 아니라 내 자식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까지 벌어온다. 밥은 그렇게 대를 이어 전해진다. 그렇기에 밥은 우리 일상 속에 깃들어있다.

한편 밥은 위처럼 형이상학적인 무형의 가치일 뿐 아니라, 형이하학적 유형의 실재가 수반되어야 한다. 실제로 밥을 목구멍에 넣는 일, 밥을 삼키는 일, 밥을 소화하여 동력을 얻는 일까지도 실체 없이는 불가능한 과정이다.


#2.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 거위는 매일같이 황금알을 낳아서 농부의 주머니를 불리고 농장 친구들에게도 밥을 먹인다. 거위가 무엇을 먹는지는 모르지만, 황금을 먹진 않겠지.

여하튼 황금의 값어치보다 덜한 것을 먹으면서 황금을 낳아대는 거위는 지칠 대로 지쳤다. 장례식장이니, 주차장이니, 비급여니 어떻게든 황금알을 낳아대니 농부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나 보다. 너는 무얼 먹어도 황금을 낳는구나. 오늘 점심은 '고마움'이야.

한순간의 손짓과 감사 인사로 증발해버리는 무형의 밥이 아닌, 유형의 밥을 먹지 못하는 거위는 알을 낳을 수 없다. 그리되면 농장 친구들도 굶을 수밖에. 허나 농부는 거위의 멱을 붙잡고는 소리친다. 너 때문에 네 친구들이 굶는데 알을 낳지 않을 셈이야?

특히나 보릿고개인 이 계절에 황금알을 낳지 않는 거위가 농부 눈에는 아니꼬울 수밖에. 허나 거위는 알고 있다. 이렇게 몇 번 더 쥐어짠다고 언제까지나 황금알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고로 한껏 발악하는 거위는 농부의 손가락을 깨물고 만다. 아야. 농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거위의 배를 갈라보기로 한다. 어차피 농부는 조만간 농장을 넘길 거거든.


#3.

누군가의 감사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지만 그 자체로 값어치는 아니다. 무형의 밥이 아닌 유형의 밥도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다. 감사는 밥이 되지 않는다.

짚고 가야 할 점은 이 밥그릇이 꽤나 큰 밥그릇이라는 것. 거위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뿐 아니라, 농장 전체를 유지하는 밥그릇에 대한 이야기다. 거위가 낳는 황금알뿐 아니라, 황금알로 밥먹는 모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거위 대 농부가 아닌 농장 대 농부이다.

입법 전부터 토지 보상을 시행하고, 의전원을 뽑는데 교육기관도 아닌 시도지사가 2~3배수를 추천하며, 의사의 수를 정하는데 의사협회를 빼고 진행하는 등 농부의 구린내는 논외로 하더라도,

공공의사의 직업 선택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하더라도, 미래가 정해진 그들이 어떤 의욕으로 어떤 공부를 하여 어떤 의사가 되고, 케이스도 없는 병원에 가서 어떠한 것을 배우게 될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정책은 효과가 없음이 자명하다.

지방의 의료공백은 근본적으로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것이며, 이는 의사의 수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지방 병원의 열악한 인프라 및 일자리 부족에 있다. 제대로 일할 여건도 안된 곳에 일자리도 없는데 어떻게 일을 하겠나.

이러한 업무 환경 및 여건의 원인은 인구가 적은 도시의 적은 환자 수, 그로 인한 수익구조가 불안정한 점 및 기피과의 저수가로 인해 부대시설로 이익을 보기 힘든 병원에서는 기피과 유지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곳에 국고를 지원하여 운영 가능한, 유지 가능한 병원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다. 더군다나 의사의 증가는 건보료의 증가를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어 있으며, 의사협회를 포함하여 의사 수가 얼마나 부족한지부터 재논의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4.

우리는 밥을 먹고 밥을 벌어 하루를 살아간다. 밥그릇 투쟁. 우리는 의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밥, 우리 모두의 하루를 위해 가운을 내려놓았다. 아니, 모두의 내일을 위해 잠시 하루를 내려놓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마라. 그 뱃가죽 너머에는 곪아버린 피와 땀만이 가득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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