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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Aug 29. 2020

3. 의사 파업 - 善

의사란 무엇인가

#禪.

분했다. 무소불위의 칼자루가 선(善)을 겨누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타자를 잡았다 놓았다 열을 내다 눈물을 내다 밤을 지새웠다. 최소한의 선(線)은 선(善)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線을 넘어 善을 해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

#1.

'의사'란 무엇일까. 의사가 채 되기도 전의 나는 좋은 의사는 무엇이냐는 주제의 공모전에 글을 냈었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의사는 죽음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 이들의 죽음을 온통 머리에 짊어지고 그 죽음을 환자에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반성했다. '납작하게 인쇄된 글자만을 올려놓은 머리는 얼마나 가벼웠던가. 쉬이 내뱉었던 진단명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던가. 시퍼렇게, 시뻘겋게 멍든 검사 값들은 고작 높거나 낮은 숫자가 아니었을 텐데.'

주제에 대한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죽고 싶은 환자를 살고 싶게끔 만드는 것. 살고 싶은 환자에게는 죽음을 내어주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 팻말 없는 죽음도, 슬픔이 슬픈 죽음과 죽음이 슬픈 죽음도 아닌 ‘건넬 수밖에 없는 죽음’이 슬퍼서 힘껏 여백을 채워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의사로의 역동(逆動)이며 이런 것들이 나를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2.

「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 구절인 이 문장은 마치 모기와 닮아있다. 어디엔가 웅크리고 있으며 매일 밤 소등 시에만 귓바퀴 근처를 활주하였고, 빛을 끄고 어둠을 켤 때만 주저 없이 나타났으니 나는 낯짝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밤마다 손뼉치기만 하였다.

그러나 망령처럼 나타나는 사명감의 낯짝을 마주하며 죽음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아름다운 의사들. 죽음을 거슬러 오르는 의사들. 우리가 존경을 담아 손뼉 치는 이들은 어제 국가에게 고발당했다.

정부는 10명의 전공의에게 형사고발을 하였다. 그중 한 명은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었다. 나는 감히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웃음을 잃지 않으며 기꺼이 몸 바치는 분이었다.

이외에도 서울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한양대병원 내과, 경기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인천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삼성서울병원 외과 등에 계신 선생님들이 고발당했다고 한다.

납작하게 인쇄된 교과서와 훌륭한 손기술만으로 좋은 의사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사명감. 사명감이라는 무형의 가치가 비틀거리는 이 시스템을 떠받들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국가는 아무리 큰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들을 잃게 되었다.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어느 구절. 이 또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문장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동료를 잃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몰래 수술을 하고 도망쳐 나온 의사와 이를 고소하는 국가. 정녕 사람을 살리고 싶어 하는 자와 인질로 삼는 자는 누구인가. 당신들에게 善을 지키기 위한 線은 존재하는가.

위 사진은 @guwangjin 선생님의 Instagram 글을 repost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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