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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Sep 13. 2020

6. 의사 파업 - 정의란 무엇인가

매미와 죄수의 딜레마

#1.

봄은 벚꽃이 피면 봄인 것을 알고, 가을은 낙엽이 지면 가을임을 알고, 겨울은 눈이 내리면 겨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허나 여름은 가로수 구석구석 매미 소리가 울창해지면 여름이 왔음을 알게 된다. 여름은 그렇게 소리로 온다.

매미는 자신의 가슴 한가운데를 푹 덜어내어 울림통을 만든다. 쉬이 비우지 못하였음이 분명한데도 움푹 제 살을 비워내고는 힘껏 울어댄다. 쓰릅쓰르르쒸이이이쓰르르. 무어라 하는지 알아주는 이 없음에도, 땀 몽글히 흘리며 외친다.

제 가슴을 베어내고 울부짖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얼마나 고된 마음고생이 있었을까.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던 하나하나는 침묵을 깨고 지상으로 고개 들어 제각각 목소리를 내었고, 이렇게 여름은 성큼 다가왔다.

#2.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는 개인의 (이성적) 최선 행동이 (Personal best choice)의 합이 사회적 최선(Social best choice)과 불일치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공범으로 의심되는 두 용의자를 따로따로 수사실로 불러 자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1년 징역, 둘 다 서로의 죄를 자백하면 5년 징역, 둘 중 한 명이 자백하고 다른 한 명은 자백하지 않았다면, 자백한 쪽은 석방, 자백하지 않은 쪽은 20년 징역에 처하게 된다. 용의자는 자백하는 것이 이득인지, 아니면 자백하지 않는 것이 이득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용의자들이 개인적인 이익만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가정하면, 상대방이 취하는 행동과 무관하게 둘 다 자백을 택하게 된다. 그 결과는 두 용의자 모두 5년의 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반면 각자의 이익을 내려놓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두 용의자는 1년의 징역으로 처벌을 끝낼 수 있다. 개인적 이익을 위한 최선의 행동은 공공의 이익이 될 수 없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방면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로 정보의 격리를 해소할 것, 두 번째로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을 사용할 것. 전자는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개인 역시 이득 보는 것이라면, 후자는 개인이 여러 가치관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최선의 이익을 볼 수 있은 방법이다.

정보의 격리가 해소되면 두 용의자는 공조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한 단체행동을 할 수 있다. 또한 로버트 액설로드(R.Axelrod)에 의하면 연속된 게임에서는 '팃포탯' 전략, 처음엔 협력하고 그 후로는 상대방의 이전 행동을 모방하는 전략이 효과가 있었다. 팃포탯을 상대로 고득점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팃포탯에도 고득점을 허용해야 했기에 팃포탯은 막강하였고, 이는 자신이 원하는 협력을 강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회성 혹은 단기전에서는 무조건적인 배반 전략이 이득을 보았다. 또한 팃포탯과 팃포탯의 만남이더라도 서로 번갈아 가면서 배신하여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는 배신자로 의심하게 된다면 상호협력은 파기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3.

날씨가 쌀쌀해졌다. 흔히 말하는 수능 냄새가 새벽공기에 넘실거린다. 그럼에도 시험을 칠 생각도, 칠 방법도 없는 면허를 내려놓은 이들이 있다. 온전히 일 년을 내려놓은 수많은 이들도 있다. 제 살을 움푹 패어내어 그곳에 목소리를 담아 우는 매미들이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당장 읍소라도 하여 시험을 치고 복학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첫 게임에서 이미 그들을 등졌으므로, 팃포탯에 따라 이번에는 배반하는 것이 옳다. 단기전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도 어찌 됐든 배반하는 것이 마땅하다. 허나 그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쉽게 하지 못한 결정임을 안다.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도 안다. 올바른 지향점에 눈감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 분하고 부끄러웠지만 변명이 될 수 없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직하게 제자리에 뿌리박고 여름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존중하며, 우리보다 곧은 이들이기에 존경한다. 허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만 그들이 다시 우리를 믿어준다면, 계속 그 자리에서 손을 내밀고 있다면, 우리가 우리의 정의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제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 묻고 싶다.

가을이 와도 매미는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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