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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May 23. 2021

베다, 베다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 나무, 그림이 되다>를 관람하고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 나무, 그림이 되다>


꾸욱- 찍었다 살포시 들어올린다. '판화.' 사전적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돌, 나무, 금속 등의 판에 형상을 낸 뒤 잉크를 바른 후 종이에 찍어내는 형식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지만 붓보다 강력한 칼 역시 존재한다.

어린 시절 한번쯤 고무판을 조각칼로 파내어 판화를 찍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몇 번 해보지는 않았을 터. 판화라는 작업은 미술이란 카테고리의 변두리에 있으니까. 나 역시도 판화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회화의 하위 예술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전시회는 판화에 대해 다룬다. 우리의 땅부터 역사, 사람들까지 우리네 삶을 찍어낸다. 판화는 판을 한껏 파내며 만들어진다. 즉, 다분히도 물리적인 예술이다. 칼자국 하나하나가 담긴 예술에는 힘이 서리고, 한이 서려있다. 그 자체로 어떠한 추상의 힘, 역동을 지닌다.

허나 판화가 단순함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칼로 베인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아린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뜻한다. 판화는 그러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달걀 섬 다루듯 세심하게 조각한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꾹꾹 눌러 담아 기억해야 할 얼굴들과 역사들이 있다.

또한 판화만이 가지는 특성 역시 매력이 있다. 판화는 일종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판이라는 물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판이 지닌 고유의 물성은 그 자체로 형상이 된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문짝을 통째로 판으로 쓰기도, 한지를 이용해 독특한 질감을 뽐내기도 하며 판화의 외연을 넓힌다. 한편 특유의 반복의 이미지는 팝아트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역사를 제유하기도 하며, 압도적인 스케일의 경이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 나무, 그림이 되다>에서의 판화는 이렇게 역동을 지니고, 섬세하게 어루만지기도 하며, 우리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우리의 날 서린 등어리를 어루만진다.

베다, 베다. 칼로 베어내서 만들어진 판화들은 우리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있다. 슬며시 베고 단잠을 청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베어내는 데에 혈안이 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나이테를 쌓듯 한겹한겹 덧대어 태어나는 판화는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서울을 떠나는 버스 내내 상념이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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