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작고 쉬운 습관 만들기가 대세다. 작은 성공을 지속적으로 창출함으로써, 선순환을 만들어서 끝내는 하나의 좋은 습관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행동의 실타래가 끊기지 않음으로써, 지속하는 힘을 만들어준다. 힘들어 보이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쉽게 포기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딱 알맞은 실천전략이다. 덕분에 작은 습관을 다루는 책들이 인기다. 쉽다고 하니 잘 팔린다. 읽기도 쉽다.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을 추천한다.
작은 습관 전략의 가장 큰 장점은 문턱이 낮다는 것이다. 하루에 팔 굽혀펴기 한개만 하면 된다. 기분 내키면 더 해도 되지만, 하루에 한개만 하면 목표달성이다. 너무 쉬워서 차라리 하지 않는게 어려울 정도다. 나도 한번 시작해봤다. 하루에 케겔운동 10회, 스쿼트 5회, 영여소설 2줄 읽기 - 전부 하는데 10분이 안 걸린다. 시작한지 3일째 됐는데, 벌써 펑크났다. 어제 하나도 안하고 그냥 잤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기분이 좋지 않은데, 케겔운동을 하며 영어소설을 읽고 싶진 않다-라고 주장하는 나의 에고에 그냥 넘어갔다. 의지박약인가? 새삼스럽지 않다. 인생이 그래왔노라고, 어깨 한번 으쓱거리고 오늘은 100% 달성했다. 안 해도 별 죄책감이 안 든다. 너무 하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하기도 쉽다.
작은 습관 전략은 '하기'도 쉽고, '안 하기'도 쉽다. 쉬운만큼 가치를 느끼기 어렵다. 쉬운 습관 전략을 계몽하는 이들은 100% 달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역시 예사롭지 않은 인내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매일매일 쉬운 습관을 100% 실천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비록 그것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위인과 포기를 일삼는 한낱 범인의 차이 정도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시작이 거창하면 시작하기 어렵다. 작게 시작하고, 작은 성공을 반복하는 것은 자기 계발에 있어 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쉽게 쌓은 습관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자신의 능력, 즉 컴포트존의 밖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수록 누구든지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쉬운 습관은 컴포트 존과 언컴포트존의 경계 근처를 최대한 가깝게, 그리고 채 몇번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속된 말로 그냥 깔짝깔짝거리는 것이다. 하루에 두줄씩 글을 써서, 책 한권을 만드려는 허황된 욕구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얼마 못 가 쥐똥만큼 쌓인 A4지와 눈곱만큼 늘어난 글쓰기 실력에 '에이'하며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티끌모아 티끌이다. 태산이 되려면, 쉬운 반복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 헬스장에서 항상 동일한 무게의 아령을 들면, 근육은 성장하지 않는다. 근육을 키우려면, 본인이 들기 버겨운 무게를 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임계점을 확장할 수록, 자신의 컴포트존이 넓어진다. 능력이 커지는 것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쉬운 습관 전략의 본질적이며 최고의 가치는 '쉽다'는 것에 있지 않다. 사실 그건 낚시다. 궁극적인 가치는 바로 '행동'에 있다. 더 정확히 얘기해서, 행동의 방아쇠를 당겨주는 것(Triggering)이다. 그냥 닥치고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많은 생각과 예단 없이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아주 큰 힘이며, 태고의 에너지다. 성장을 위한 장기적인 노력에 있어서는 생각 다음에 행동이 아닌, 행동 다음에 생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발을 굴러야 심장이 뛰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많은 이들이 시작도 하기전에 실패를 경험한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저질의 실패다. 우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미지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물론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도 있으나, 이는 최상의 실패다. 라로슈코프가 말한 그대로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지 못한 가능성이다.
행동을 만들어내는 작은 습관 전략은 가능성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작은 노력으로는 작은 것밖에 얻을수 없다는 태초 이래의 케케묵은 자기 계발 격언은 아직 유효하다. 성철스님은 살아 생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바로 만나지 않았다.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법당에서 1000배를 해야만 했다.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귀찮아서 돌려보내기 위해 그랬을까? 물론 많은 이들이 1000배를 하라는 요구에 성철스님을 만나는 것을 단념하고 발길을 돌렸다. 1000배를 하던 도중에 포기하고 집으로 가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1000배를 다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성철스님을 찾지 않고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1000배를 하는 동안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하루에 한번 절 하는 것을 1000일을 반복하는 것과 한번에 1000배를 하는 것이 같은 깨달음을 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루와 1000일의 차이는 엄연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