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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종 Aug 12. 2020

위조 성적표

그는 경상남도 산청의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집은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배 곪지 않고 사는 것조차 어려운 시절이였습니다. 소작농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국에 큰 도시로 자식을 유학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아버지가 교육을 받지 못한 한 때문이였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는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지만, 공부가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대충 하고 노는데 바빴습니다. 결국 1학년 최종 성적을 받았는데 68명중에 68등, 꼴등이었습니다.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집안 형편에 맞지 않는 큰 돈을 들여 공부를 시켜줬는데, 꼴등이라는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성적표를 위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68/68 이라는 석차를 1/68로 고쳤습니다. 보통학교도 다니지 못해, 글을 잘 모르는 아버지를 속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등으로 나온 성적표를 받아든 아버지는 그에게 공부하느라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주었습니다. 대구로 유학을 갔던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근처 친지 및 동네 주민들이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다들 그가 공부 잘 했냐고 물어보았고,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1등을 했는가베, 이제 시작이니 좀더 지켜봐야제"


1등을 했다는 말에 친지들은 축하를 건넸고, 동네 잔치를 하라고 성화였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돼지를 잡아서 친지들과 동네주민을 위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돼지는 아버지가 아끼고 아끼는 재산목록 1호였습니다. 일이 커지게 되자, 그는 당혹스러웠습니다. 강가로 달려가 망연자실 흐르는 강물만 쳐다보았습니다. 자기스스로가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물에 빠져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는 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대구로 돌아간 그는 죽기 살기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후 대학교수가 된 아들은 어느날 가슴속에 묻어놓았던 그때 일을 아버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 저 중학교 때 1등 했던 거 말입니다.. 사실은 그게..."


담배를 피우며 아들의 얘기를 듣던 아버지는 말을 끊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네 아들이 듣겠다"


경북대학교 13대, 14대 총장을 지낸 박찬석 총장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감히 단언하지만, 박찬석 총장의 아버지같은 태도를 견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하는지 모니터링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혹시나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아이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 참견하느라 부모와 아이 모두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박총장의 아버지가 보여준 태도를 방임이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신뢰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요. 


우리는 부모로서, 그리고 자식으로서 정녕 신뢰를 하고 있는지, 또한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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