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창조의 순간
내 인생의 첫 코딩은 중학교1학년 때였다. 지금은 갤럭시 스마트폰를 만드는 회사가 제일 잘 나가는 전자제품 회사지만 그 당시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하던 재벌회장님의 회사가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던 회사였고, 그 회사에서 나온 엄지 척 마크가 새겨진 PC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컴퓨터였다. 16비트 IBM-PC호환 컴퓨터였고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였다. 플로피 디스크를 끼우고 전원을 켜면 화면 가득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컴퓨터가 켜졌다. 깜빡 깜빡이는 프롬프트에 내가 원하는 코맨드를 입력하면 컴퓨터는 즉시 그 대답을 나에게 보여줬다. 베이직(GW-Basic)은 번들 형태로 들어있던 프로그래밍 언어였는데, 별도의 컴파일이 필요 없는 인터프리터 프로그래밍 언어였다. 도형을 그리라는 코드를 넣으면 화면에 도형이 그려졌고, 음계를 연주하라는 코드를 짜서 넣으면 컴퓨터의 스피커에서는 디지털 사운드가 울려펴졌다. 1990년대 삐삐나 초창기 휴대폰의 벨 소리보다 못한 삑삑거리는 단조로운 멜로디에 불과했지만 당시 내게는 베토벤 교향곡 부럽지 않았다. 좋아하던 가요의 음계를 프로그램코드로 만들어 재생시키고 그것을 다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다. 친구에게 테이프를 들려주며 마치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도 된 것 마냥 뿌듯해했다. 부모님 몰래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컴퓨터 전원을 켰다.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빠졌다. 조잡하지만 * 또는 # 같은 기호들로 이루어진 길 찾기 게임도 만들었다. 코흘리개 동생에게 게임을 시켜주며 마르쿠스 페르손(마인크래프트 개발자)이라도 된 것 마냥 으스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때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개발 산출물 수준을 넘어서 프로메테우스가 숨결을 불어서 만든 인간이 된다. 작가에게 있어 본인이 쓴 책이 산고의 고통 끝에 나온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듯이, 개발자들에게 코드와 소프트웨어는 때론 개인의 혼을 담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락실에서 50원짜리 동전을 넣고 비행기를 조종하던 꼬맹이에게 그 비행기와 그 게임 화면 자체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단순히 하나의 캐릭터로서 게임 안에서 주어진 생명만큼의 시간을 사는 것과 그 시공의 한계를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살아 움직였고, 내가 쓴 글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와 같은 오프라인 놀이에 젬병에다가 동네 아이들과의 골목놀이에서 항상 열등했던 나였지만 좁은 방안 16비트 컴퓨터 세계에서는 내가 곧 신이었다. 내가 규칙을 만들었고, 마음에 안 들면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바꾸었다. 내가 만들고 저장하고 때론 삭제하는 수많은 디지털 데이터들, 어린 나이였지만 신이 어쩌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호모데우스>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신이 되기를 원한다고 썼다. '데우스'는 그리스어로 신을 의미한다. 구석기의 원시인에게 현대인의 모습은 신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스인들에게 첨단무기로 무장한 현대전의 군인은 전쟁의 신 아레스로, 성형과 화장으로 미를 뽐내는 여인들은 미의 여신 비너스로 보일지 모른다. 실제로 인간은 신에 더 가까워졌을까? 생명공학과 의학의 발달로 노화는 늦어지고 있다. 죽음을 초월하려는 시도는 유사 이래로 계속되어 왔고, 테크놀로지는 인류에게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점점 더 불어넣고 있다. 인류는 이미 하늘을 날 뿐만 아니라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먼 옛날 토끼가 방아를 찧던 달나라뿐만 아니라 우주의 행성에 인간의 발자국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것이 신에 가까워지는 인간의 모습인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신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한 개인의 통제력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도리어 현실세계에서 인간은 잘 동작하는 하나의 컴퓨터 부속품과 같아지고 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러더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부작용이 없는 마약)는 없지만 그 소설들에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결코 다른 세상 이야기일수만은 없다. 내 몸뚱아리와 내 사고마저도 현대사회의 기술적 통제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통제하기는커녕 통제당하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신은 신이 아니다.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무기력해진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점점 늘어나서 결국 자신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결코 생물학적인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으면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죽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일체의 교류를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다. 보란듯이 잘 살아가고 싶지만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네.'라고 읊조리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