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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종 Jan 07. 2019

#54 첫출장 2

영국 사우스햄턴(Southhampton), 문화의 차이란

끝없이 뻗은 고속도로의 옆으로 양떼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너른 벌판이 지나갔다. 멀리 지평선 너머 일몰을 준비하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런던에서 사우스햄턴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막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둑어둑해져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강대리는 렌트를 하고 일주일을 운전을 했음에도 여전히 가끔 역주행을 한다고 했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본 재미있는 실험이 생각났다. 자전거의 핸들과 바퀴의 회전방향을 거꾸로 하고 사람들이 자전거를 얼마나 잘 탈수 있는지 보는 실험이었다. 실험자 중 그 누구도 제대로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자전거 타기는 끝없는 균형과 길에 자신의 몸을 맞추어야 하는 연속된 변화의 흐름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변화의 방향은 익숙한 곳으로의 전환일뿐이다. 익숙한 곳으로의 변화, 그것은 상상의 한계이며 관성의 무의식적 작용이다. 어쩌면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우리에게 수만년동안 뿌리박힌 DNA의 작용 때문일수도 있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방향 전환 - 그것은 출장과 개발업무의 속성이며 또한 변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숙소는 한적한 교외의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풍스럽고 아담한 호텔이었다. 출장업무는 제품에 탑재되는 보안 소프트웨어에 대한 공인인증을 위해 해당 보안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주는 회사에서 사전 개발을 하는 것이었다. 출근 첫날, 강대리는 나이 지긋한 백인 엔지니어 두 사람에게 날 소개해주었다. 


"나이스 투 밋츄. 아임 알렉스"

"나이스 투 미트 유 투, 마이 네임 이즈 OOO"


난 한국이름으로 내 소개를 했다. 영어 이름을 아직 만들지 않았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알렉스는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오케이, 저스트 콜 미 미스터 리(Mr. Lee)"

"왓(What)? 미스터리(Mystery)?"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기억이다. 그에게 있어 새파랗게 어린 동양인 녀석이 자신을 이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수수께끼' 내지는 '신비한 사람'으로 불러달라는 게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해프닝 끝에 대학시절 교양영어 수업에서 썼던 닉네임을 기억해냈고, 지금도 그 영어이름을 사용중이다. 


온 몸에 털이 숭숭난 그들은 우리만 보면 낄낄거리고 웃어댔다. 뭐라뭐라 알아듣기 힘든 영국식 영어를 속사포처럼 늘어놓았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땀을 뻘뻘 흘려댔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마치 죄라도 되는 냥 말이다. 그래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는데도 알아들은 것처럼 했다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게 두번 세번 되풀이하여 설명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못 알아들었다고 다시 말해달라고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화의 차이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수용하지 못 한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지만,  서양인들의 관점은 말을 전달한 상대방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편이다. 다시 말해 서로 의사가 전달되지 않는 것은 전달해주는 쪽의 노력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수용하는 이는 이해 여부를 적절히 표명할 책임만 있는 것이다. 


동양사회는 고맥락 사회다. 많은 관계 속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많은 함축된 의미들이 통용된다. '머시기가 머시기하니 머시기하네'가 통용되는 것이 우리 사회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 이런 테스트가 나온다. 닭, 소, 풀 세가지 중 두가지를 하나로 묶어 보는 것이다. 소와 풀을 하나로 묶었다면 당신은 동양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소가 풀은 먹는 것은 관계다.  반면 서양인들은 같은 돔물이라는 이유로 소와 닭을 하나로 묶는다. 동양과 서양을 지도상의 하나의 선(line)으로 구분해서 여기는 동양이고, 여기부터는 서양이라고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통상 서양적 사고는 명사의 지배를 받는 규칙에 기반하고 동양적 사고는 관계에 기반한다.


현지 직원들은 6시만 되면 모두 퇴근했고, 강대리와 나는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했다. 회사가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있어서, 점심에는 밥차 같은 것이 왔고 줄을 서서 샌드위치나 도시락같은 것을 사서 먹었는데, 저녁에는 사먹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이면 강대리와 나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한국에서 공수해온 컵라면과 햇반, 김치, 장아찌로 식사를 했고, 사무실에 냄새가 베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곤 했다. 그 날 저녁도 햇반과 인스턴트 육개장을 데워서 머그컵에 담고, 아끼고 아꼈던 깻잎 통조림과 마늘 장아찌 통조림을 동시 개봉한 후 성스런 저녁식사를 앞두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면서 오토바이 헬멧을 옆에 낀 알렉스가 들어왔다. 아마도 사무실에 뭔가를 두고 가서 되돌아온 것으로 보였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가 소리쳤다.


"오(Oh)! 스멜 오브 헬(Smell of Hell)!!"


우리는 한없이 미안하고 초라해졌다. 놓고 간 물건을 챙긴 후, 알렉스는 장아찌 냄새가 몸에 벨까 두려운 듯 황망히 인사도 없이 사무실을 떠났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우리 사무실에 출장 온 인도 엔지니어 둘이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강렬한 냄새의 카레를 날리는 밥에 뭍혀 손으로 집어 먹고 있다. 컵과 접시는 공용으로 쓰는 것들이다. 얼굴은 좀 찌푸려질지도 모르겠지만, 면전에서 "스멜 오브 헬"을 외치면서 똥이라도 묻을까 두려운 듯 사무실을 떠날수 있을까? 문화의 차이일지도 개인적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조금 더 깨닫게 된 것은 유렵이나 미주가 아닌 동남아 지역으로 출장을 가면서부터였다.


몇 년전 베트남 하노이로 출장을 갔을 때, 스스로가 느끼는 어깨의 경직도가 유럽이나 미주로 출장을 갔을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질적인 느낌은 사실 별 차이가 없었다. 유럽이나 미주에 있을 때보다 좀 더 어깨를 당당히 펴고 돌아다닌 것은 단순히 같은 동양의 나라였기 때문이 아니였다. 덩치 큰 백인과 흑인들사이에서 움츠려든 것은 그들의 나라가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이기에 암묵적으로 작용된 국가적 열등감과 함께 무의식적인 자기 스스로에 대한 인종차별은 아니였을까? 나보다 덩치가 작은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 반대의 감정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양은 수직적 위계가 중요시되는 사회이고, 서양은 상대적으로 수평적 위계가 보편화된 사회다. 우리는 어디서나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어디를 가더라도 스스로를 갑 아니면 을의 위치에 고정시켜버린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을의 위치에 익숙하다. 갑과 을의 위치는 국가적 상대성이나 문화적 차이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스멜 오브 헬"을 외치고 사무실을 떠난 알렉스는 갑이 아닌 위치에서 의견이나 감정을 표출한 것이지만, 나는 그것을 을의 위치에서 받아들였기에 굴욕적인 것이다. 외국 엔지니어들과 일할 때는, 특히 그들의 나라에서 일할 때는 그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것을 내 멋대로 오해할 수 있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 또한 그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TV광고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이라는 한 유명제과의 CF가 있는데, 대부분 외국인들과는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레짐작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하고 확실하게 알아듣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보편적 문화 역시 중요하다. 한번은 불가피하게 사무실 밖의 화단에 침을 뱉은 적이 있는데, 지나가던 그 영국 회사 직원이 보고는 내게 다가와 주의를 주었다. 그의 자세는 다분히 고압적이었다. 화단에 침 뱉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당시 난 내 행위보다 그의 자세가 못마땅했다. TV의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에서 덩치 큰 미국 야구선수들이 아무데나 찍찍 침을 뱉는 장면을 보아온 나로서는 그런 주의를 받는 것이 마치 인종 차별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침을 뱉는 행위가 어느 곳에서든 좋게 보일리 없다. 기본적으로 아니다 싶은 것들은 대부분 아니다. 원정경기의 텃세라고 생각하지 말고, 보편적 룰을 지키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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