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네발자전거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더니 핸들이며 페달, 보조 바퀴 등이 분리된 채로 왔다. 주말이 되자 당장 시운전을 해보겠다는 아들. 안전을 위해 가까운 전문점에서 조립하는 걸 추천한다고 사용설명서에 친절하게 나와 있지만, 난 직접 아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가며 안전하게 조립하는 걸 선택했다. ‘미다스의 손’인지 ‘마이너스의 손’인지를 가늠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40대 중반에 나의 새로운 능력을 알게 될 줄이야!’ 약간의 감동과 함께 자전거 조립을 모두 마치고, 바로 강습에 들어갔다. “오른발 먼저, 다음은 왼발, 하나씩 페달을 구르고. 허리는 곧게 펴고, 시선은 정면을 봐야지” 네다섯 살 때 세발자전거도 제대로 타지 못했던 아들이라 걱정을 했는데, 제법 잘하는 걸 보니 나도, 아들도 대견했다.
자전거 타는 건 한 번 배우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잘 잊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상이 대부분 같다. 아빠 또는 형이나 언니, 아니면 남자 친구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자전거를 못 타는 이성에게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로 ‘자전거 강습’이 아주 효과적이었던 거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아니면 말고.’
암튼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며 즐거워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게 참 즐겁다. 그리고 이런 상상도 했다. 페달을 힘겹게 밟으며 원을 크게 도는데 갑자기 이번 한 바퀴를 돌면 6살 아들이 한 16살쯤으로 훌쩍 자라 있는 거다. 또 한 바퀴를 돌면 또 20대가 돼 있기도 하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크게 도는 원 같은 거니까. 자전거로 집 앞에 큰 원 한 바퀴를 돌 듯이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고, 그렇게 나이를 먹고, 아이가 크고.
나의 역할은 보조 바퀴 정도가 아닐까? 아이의 인생이 균형을 잃고 흔들릴 때, 다리에 힘이 빠져 페달을 구르는 것조차 힘겨울 때, 두 손으로 쥔 핸들로도 똑바로 서지 못할 때, 그저 넘어지지 않게 자전거를, 아이의 인생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거다. 햇살 좋은 5월의 주말 오후, 그놈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