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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Sep 10. 2019

잡초 뽑기

 10평 남짓의 잔디밭을 가꾼다. 드라마 속 송혜교나 김태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저 바라보기엔 상상만으로도 참 좋은 일이다. 잔디밭, 송혜교, 김태리 모두 존재만으로 낭만적이긴 하다.


  그런데 부지런하지 않다는 집안의 평가를 받는 나에겐 잔디밭을 가꾸는 건 참 고된 일이기도 하다. 일단 물을 주는 건 고됨과 힐링의 정도가 비슷하다. 초록색이 눈에 좋다는 것 때문인지, 잔디에 물을 주는 건 마음의 안정제 역할을 한다. 여름철 쑥쑥 자라는 잔디를 깎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부가적으로 테니스 치는 데 도움이 되는 손목과 팔뚝의 근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가장 문제는 잡초 뽑기다. 물을 주거나 잔디를 깎는 일과 비교해서 일단 ‘폼’이 안 난다. 허리도 많이 아프다. 열심히 뽑았는데 다음 날 나와보면 표가 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치명적이다. ‘약속대로 뽑았냐? 안 뽑았냐?’를 주제로 와이프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잡초를 뽑아주지 않으면 잔디가 잘 자랄 수 없으니 누군가는 해야 하고, 우리 집 당번은 나다. 


 여러 풀이 있는데 그저 이름 모를 잡초로 불리기엔 억울한 것도 있다. 대표주자는 민들레. 노란색 꽃도 예쁘고, 홀씨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된다. 냉증 개선과 해독에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도 쓰이는 귀한 식물인데 잔디밭에선 찬밥 신세다. 뿌리를 워낙 깊이 내려 뿌리까지 완벽하게 뽑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꽃말까지 ‘행복’이라 잔디밭에서 민들레는 제거할 땐 ‘내가 행복을 뿌리째 뽑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또 가끔 잡초를 뽑을 땐 평소엔 잘 작동하지 않는 연민과 인류애 같은 게 마음을 괴롭힌다. 식물에도 ‘살아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굳이 내가 송혜교나 김태리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낭만을 얻자고 죄 없는 얘네를 이렇게 없애야 하나?’ 이런 마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유독 슬퍼 보이는 잡초 몇 개를 그냥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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