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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Oct 20. 2021

욕조 욕심

 집을 짓기로 했을 때 딱 두 가지 욕심을 냈다. 첫 번째는 나만의 작은 서재, 그리고 두 번째는 밖을 볼 수 있는 욕조였다. 물론 욕조에 앉아서 보이는 풍경이 좋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고. 우리나라에서 집을 짓는다는 건, 그래도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의 구조와 다른 설계에 욕심을 낼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욕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밖을 볼 수 있는 욕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볕이 좋은 2층에 비교적 넓은 욕실을 두었고, 창이 작은 게 조금 아쉽지만 북한산과, 북한산과 맞닿은 하늘과, 가끔은 그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아이와 함께 누워서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로 욕조를 설치했다.      


 한 달에 두어 번, 절반은 아들의 요청으로, 절반은 나의 요청으로 아들과 난 그 욕조에서 논다. 놀이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때그때 다르다. 공룡 몇 마리를 갖고 싸움을 한다거나, 물총을 쏘면서 놀기도 하고,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를 물에 띄워 뱃놀이도 한다. 샤워 거품을 갖고 유리창에 글씨를 쓰기도 하고, 물이 작은 구멍으로 흘러갈 때 뱅글뱅글 도는 걸 함께 관찰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걸 ‘코리올리의 힘’이라 부르는데, 묘하게도 

이것이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전향력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북반구에선 오른쪽으로 돌고, 남반구에선 

왼쪽으로 돈다는 놀라운 사실도 함께 확인했다. 오, 놀라운 ‘부자 욕조 놀이의 힘’ 아닌가?


 지난 주말엔 내가 제안을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7시쯤. 한낮의 열기는 아마 ‘지구 자전으로 인한 전향력 때문에’ 오른쪽으로 돌아 하늘로 사라지고 있었고, 따뜻한 듯 시원한 공기가 크고 풍성해진 나무 사이를 오가며 우리 집 앞까지 다녀갔다. 적당히 따끈한 물로 욕조를 채우고 아들과 나란히 누웠다. 기분을 내려고 얼마 전에 알게 된 ‘헤르쯔 아날로그’의 노래도 틀었다. 너무 뻔뻔해서 걱정이었는데, 초등학교에 가더니 아이가 조금 

위축된다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또래보다 힘이 조금 부족하고, 몸을 쓰는 데 겁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아직 어리고, 타고난 성향이 있다 보니 부딪치면서 또 깨달으면서 잘 크겠지’하고 넘겼다가도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그냥 학교와 친구 얘기를 묻기도 하고, ‘그냥 혹시 힘들면 아빠가 힘이 되어 줄게’하고 마음으로 얘기했다.      


 새로운 놀이도 개발했다. 머리를 감겨주다가 거품으로 뿔을 만들어주고 음악을 듣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여줬더니 아들이 참 좋아했다. 점점 가늘어지고 숱이 빠지는 내 머리카락으로도 뭘 만들어 보겠다 해서, 

우린 헤어 스타일링과 사진 찍기를 하며 한참을 놀았다. ‘그냥 혹시 아빠 머리숱이 더 많이 빠져서 볼품이 

없어지면, 네가 좀 힘이 되어 주라’하고 마음으로 얘기했다.   

    


 ‘뜨겁던 해는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어둠으로 물든 하늘엔 식은 공기만 있어... 향기로운 바람이 불면 살며시 미소를 지어 무더웠던 나의 하루를 어루만져주는 여름밤’ 헤르쯔 아날로그의 ‘여름밤’이 욕실에 흘렀고, 우린 어쩌면 이 노래 가사처럼 서로를 물과 거품으로, 그리고 몸을 담그기에 적당한 온도의 뜨근한 마음으로 어루만져주었다.      

 

 집을 짓고 싶다면 꼭 욕조에 욕심을 내세요. 욕조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볼 수 있다면, 그 풍경에서 혹시 좋은 노래 가사 한 곡 떠오른다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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