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7살이었던가? 갑자기 하늘을 날고 싶다며 날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적당히 두께가 있는 흰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날개를 그리고, 적당히 예쁘게 색을 칠했다. 좌우 시력 1.5를 자랑하는 두 눈을 부릅떠서 날렵하게 가위질을 하고, 구멍을 뚫어 어깨끈까지 만들었더니, 7살 아이가 보기에 꽤 괜찮은 날개가 완성됐다. 딸은 날개를 달고 침대에 올라 나름, 경쾌한 날갯짓으로 바닥에 내려오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마침 그때 앞니가 두어 개 빠져있었는데, 마치 파일럿이 멋진 시험비행을 마치고 지을 법한 뿌듯한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하늘을 날아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런 질문과 의문은 꽤 근원적이고 보편적이다. 마치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처럼 말이다. 물론 100여 년 전, 우리 딸보다 호기심이 훨씬 왕성했던 라이트 형제들 덕에 우리는 하늘에서의 자유를 얻었고, 또 패러글라이딩으로 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비행기는 나의 몸이 온전히 나는 게 아니고, 패러글라이딩은 솔직히, 무섭다. 그래서 난 가끔 등산을 한다. 다리 힘을 기르고, 폐활량을 늘리고, 경치를 즐기고, 성취감도 느끼고, 동료들과 우정도 쌓고 등등 등산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내가 산을 찾는 목적 가운데 정말 중요한 하나는 잠시나마 삶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가본 산이라 해봐야 집 앞에 북한산 봉우리 몇 개가 전부지만, 그 몇 개의 코스 중에, 5년 전 7살 딸이 내가 만들어준 가짜 날개를 달고 침대에서 내려올 때 느꼈던 기분을 알 것 같은 곳이 있다. 천년고찰이라 알려진 진관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조그맣게 난 등산로를 따라 1시간 남짓 쉬엄쉬엄 가다 보면 응봉이 나온다. 해발 333m, 안내판도 없을 만큼 별 특별함이 없는 봉우리인데 응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잠시 오솔길을 지나면 하늘이 열리고, 하늘을 지나는 길이 열린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에 사랑을 받고 있는 사모바위로 가는 능선이다. 길이는 10여 m, 좌우로 보면 낭떠러지지만 길의 폭이 웬만한 겁쟁이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심을 참을 만큼 적당하다. 응봉이 밑에서 보면 매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매 응(鷹)을 썼다 하지만, 난 매의 눈으로 하늘 아래를 살필 수 있는 곳이라 읽는다.
그렇게 나는, 하늘을 나는, 나를 찾으러 가끔 산에 오른다.
하산하며 애정 하는 장필순 님의 ‘제비꽃’을 듣는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로 싶어”
아빠도 가끔 날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