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한 복판인데 주말 기온이 15도까지 올랐다. 코로나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마당에 나오니
따뜻하고 달콤한 바람에 뭔가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겨우내 현관 구석에 무심하게 놓여있던 철쭉 화분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햇빛을 못 봐 반쯤 냉동 상태인 것처럼 바짝 움츠려 있던 모습이 내심 안쓰러웠던가 보다. 엉거주춤 앉아 꽤 무거운 화분을 몸에 최대한 밀착시키고 다리와 허리의 힘을 십분 활용해 무사히 화분을 옮겼다. 오랜만에 물도 흠뻑 주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지난해 내 생일에 옆집 형님이 선물한 극락조도 얼른 거실에서 옮겨와 바깥 현관 양지바른 곳에 앉혔더니 금세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줄기에 힘이 느껴지고, 잎은 생기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 심은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 때다. 먼저 배롱나무부터. 인터넷을 통해 배운 대로 밑으로 뻗은 가지와 나란히 자란 것 중 못난 것, 엑스자로 엇갈려 자란 것 등을 쳐낸다. 잔가지는 다 잘라내고, 잘 자란 가지도 끝을 쳐준다. 지난해 열매를 잘 맺지 못한 자두나무에도 한번 더 기대를 건다. 같은 방법으로 가지를 잘라냈다. 미숙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나무가 시원하고 깔끔해졌다.
그런데 사실 마음이 독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지치기는 참 어려운 작업이다. 가지치기가 나무를 더 건강하게 자라게 해서 꽃도 많이 피고, 열매도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건 알지만, 왠지 살아있는 가지를 자를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잘난 놈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을 조장 내지는 실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이 가지, 저 가지 다 같이 조금 덜 건강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기도하고, 순간의 실수로 잘 자란 가지를 잘라버리는 건 아닌지 자책도 들고.
그래서 고백하자면 지난해 벚나무를 가지치기할 때는 용기와 과감함을 얻기 위해 술을 몇 잔 마시고 가위를 들었다가 성한 가지가 처참하게 희생되기도 했다. 이제 어쩌겠는가? 잘려 나간 가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나무를 더 정성껏 보살피고 키우는 수밖에. 그래서 꽃과 열매로 우리 가족과 이웃을 널리 이롭게 하는 수밖에. 다음 주나, 다다음 주 봄이 조금 더 가까이 오면 잘린 나뭇가지들의 넋을 기리며 영양 만점의 계분 비료를
듬뿍 먹여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