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는 가볍지 않은 타이틀을 얻고 6년이 지났다. 내가 원해서 공부했는데 이후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니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 더 길어진 직장 수명? 아니라고 그냥 내가 열심히 일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떨떠름해서 그렇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또 다른 박사들과의 모임을 만들어 주니 내 주변의 관계성에도 긍정적 변화를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다 폭넓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관계성을 확장했기 때문에 기회도 많아지고, 많이 배우게 된다.
그런데 같은 박사들을 보면 묘한 습성이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사람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병인 것은 가르침을 받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듯 때론 맹렬한 기세로 훈계한다. 그런 박사들과 나는 6년 이상 모임을 갖고 있다. 때론 그들과 모임을 주선하기도 한다. 하지만 엊그제 모임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들의 가르침 대상이 되었기에 아주 힘들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는 강력한 희망을 안고 살고 있다. 그래서 뭔가 정재 된 것보다는 흔히 이야기하는 날것이 좋고, 그것이 순순해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정장보다 청바지가 좋고, 억지로 파스타와 스테이크에 나를 길들이기보다 쿰쿰한 청국장을 찾는다. 그런데 냄새나는 청국장을 왜 자꾸 먹느냐고 나무라면 나는 발끈한다. 본인들도 맛있어하면서 왜 스스로를 억제하고 사느냐고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교육팀장 14년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었나 하며 반성한다. 그 많은 교육생들이 자신이 가진 본성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나는 내가 공부하고 내가 경험했다고 착각한 바른 길이라는 프레임에 그들을 가두어 넣으려 했다. 분명한 오류다. 생각의 오류다. 그리고 교육을 떠나 요즘은 여든 정도 되신 나이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끔씩 경청하게 되는데, 그때면 그들이 꼰대이기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것에서 생각의 유연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 생각을 존중하고, 허허 웃는다.
그런데 엊그제 만난 박사 모임은 경직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약간 어깨에 뽕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새로 산 가방 이야기,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까지는 좋다. 하지만 남의 말을 가로채서 평가하고 바꿔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묘하게 박사 모임의 그들을 보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잠시의 참을성도 약하다. 뭐 나도 다르지 않다. 순간순간 치솟는 혈압에 발끈하다가 이내 술만 마시니 말이다. 이 자리를 마무리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빨리 계산하고 자리를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생각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묘한 말 잇기 게임처럼 지루한 말잔치가 이어지고 있어 더 그랬다.
전염병처럼 공동으로 함께 감염된 가르침의 병이 치유되기에는 내 마음의 그릇을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경청이라는 처방과 인정이라는 치료가 있어야 이 병이 나을 듯하다. 세 시간의 말잔치에 에너지를 많이 뺏겼다. 오늘은 박사도 있고, 의사도 있고, 기업 CEO도 있는 더 성공한 놈들과 말잔치를 해야 하는데 경청과 인정으로 에너지를 받고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