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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ul 27. 2022

【아들에게 느끼는 열등감】


새벽밥을 먹고 나가서 밤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삶.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의 일상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 ‘녀석 꽤 힘들겠네.’ 하면서 나는 왜 아직도 힘들게 일하고 있지? 하는 반문도 생긴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내 생각과 같은 생각으로 삶을 대하지 않을 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 듯하다.     


“야 이놈아, 밤새 그렇게 게임을 하니 낮에 피곤하잖아.”

“금요일 밤에는 저도 스트레스 좀 풀어야 하잖아요”     

“넌 금요일만이 아니니까 아빠가 뭐라 하는 거잖아.”          


지난 주말 아들의 야간 게임 문제로 의견 충돌이 있었다. 급기야 큰 소리가 나고 그 녀석의 방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방해하는 노트북을 회수했다. 마음 같아서는 스마트폰도 빼앗고 싶었다. 그맘때 나도 학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그때를 후회하기에 아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지금의 내 마음. 그래서 그런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영 찜찜하고 먹먹해진다.


나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들에게 어쩌면 자신의 분신과 같은 PC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 아들에게 얼마나 큰 허전함을 줄 것인가 하는 마음에서다. 학창 시절 기타를 치며 노래 한 곡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딴따라 될 거냐’며 기타를 빼앗고, 부수던 부모님의 걱정에 격하게 반항하고 대들었던 기억. 부서지는 기타의 굉음은 고이 간직한 내 소중함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아들도 그런 기분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들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때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 그런데 내가 뭐 잘나서 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주문을 하는가. 그저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내심 아주 조금 남은 알량한 아버지로서의 자격지심 뭐 그런 것인가 보다. 그래서 아들의 소중함에 아무 거리낌 없이 손을 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아들은 착하다. 그런 아버지에게 조금 대들다 이내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자기 방으로 ‘쾅’하며 들어가니 말이다. 그놈 마음속이야 알 수 없다. 아버지를 욕하든, 서운해하든, 그놈의 팔자다. 그런데 나는 좀 퍽퍽하다. 아무리 내 맘 같지 않아도 그 녀석이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서면 애써 당당했던 어깨가 어색해지고 뒤끝이 켕긴다. 

      

아들이 아기 때는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어르고 달래고 하면서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면 그저 행복했다. 그런데 조금 자라고 나면 이내 욕심이 생긴다. 나보다 더 잘난 아들을 만들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분명 대리만족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지금의 내 모습에 당당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열등감이 스믈스믈 올라와 아들을 강요하고 있다. 단 하룻밤이 지나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고삐리 아들 앞에 그렇게 당당했던 내 행동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노트북은 내 방에 며칠 더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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