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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ul 11. 2023

【아들의 DNA】

“야, 넌 정말 술 가문이야.”


군대 제대 후 늦게 들어간 예비역 신입생이 된 나에게 다른 학과 예비역들이 늘 하던 말이다. 당시에는 정말 술을 많이 마셨고 혼자서 소주 대여섯 병은 문제도 아니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잔디밭에서 1차로 막걸리를 마시고, 이후 주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마지막 입가심으로 치킨에 생맥주 500 열 잔 정도를 마셨다. 그리고 아침에 숙취는 있어도 수업에 늦지 않게 나갔다. 당시 술친구들은 방학이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 형님과 함께 저녁 술판이 벌어졌는데, 젊은 놈들이 우리 가족만 남겨놓고 다 나가 떨어졌다. 그 경험 때문에 놈들이 나를 술 가문의 아들이라 불렀다.     


“어이, 오늘 한 잔 어때.”


회사에 와서 ‘야호’ 하며 회식을 즐겼던 30대를 지나 40대 후반부터 술이 조금씩 무서웠다. 술도 나이에는 장사 없고 과거의 맷집 좋은 술꾼에게도 버거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는 어지간하면 회식에 술이 빠지는 일이 없었다. 하나, 둘 늦게 나타나는 군상들에게 새로 한 잔씩 받다 보면 술이 술술 넘어가고 행동이 설설 긴다. 하지만 아침이 옛날 같지 않고, 다음 하루는 육체적 괴로움에 하루의 시간을 날리기 일쑤다. 그래도 아직 동년배에 비해서는 상당한 주량이고, 다음날 모습도 상위 5% 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 내 몸속에는 조상 대대로 흐르는 술 가문의 피가 흐르나 보다.     


“얌마, 아빠랑 한 잔 마시자.”


어느덧 아들이 스무 살이다. 죽어도 술에 입도 안 대던 녀석이 요즘 한 잔씩 받는다. 이제는 자기도 어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수능시험을 못 봐서 재수를 결정하고, 하루하루 힘들어하는 녀석에게 오늘 한 잔 먹자고 했다. 뭐하며 시간을 보내냐고 물었더니,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뭐 그냥 혼자 고민하며 보내는지 별 이야기가 없다. 내심 사회생활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딱히 그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늘 녀석의 깜냥을 보려고 아빠랑 술 한 잔 먹자 한 것이다. 퇴근 후 바로 아들 녀석과 함께 집 앞 대폿집을 둘러보다 양꼬치 먹어봤냐고 했더니 못 먹어봤다고 한다. 이제 안주가 선택되었으니 바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안주 나오기 전에 소주 한 잔을 부어줬다. 현실이 목을 타게 했는지 바로 벌컥 마신다. “야 임마, 어른 앞에선 돌려 마셔야지.”하며, 꼰대다운 주도를 가르친다. ‘응’하는 퉁명한 대답을 듣고, 한 잔, 두 잔 주거니 받거니 녀석이 한 석 잔 마셨는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실만 하단다. 주인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아들이지만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에요?” 하며 스쳐 지나간다. 아차 싶어 그만 줘야겠다 생각하고 술자리를 마쳤다.     

아들에게도 술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거부감 없고, 따라주면 마시고, 안주 안 가리고, 주종도 불문이다. 이 정도면 DNA는 검사하지 않아도 내 친자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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