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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Aug 24. 2020

【위문편지는 아빠, 엄마가 쓴다】

 

육군 복무기간이 1년 6개월이란다. 30개월씩 하던 우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그래도 입대하기 전 입을 굳게 다문 아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제는 전화도 왔다. 녀석 전에는 대답만 하더니 이제 꽤 긴 문장으로 통화를 한다. 몇 주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도 훈련기간인데, 벌써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은 <더 캠프>라는 군대 간 아들과의 소통을 위한 카페에 들어가 위문편지를 썼다. 쓰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는 것은 80년대 군 생활을 했던 내가 받았던 위문편지가 어렴풋하게 생각이 나서다. 누가 봐도 그리 성의가 있어 보이지 않은 흰 봉투에 노트 찢어 드문드문 써내려간 위문편지는 어느 여중생의 편지였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다. 이성의 편지여서 말이다. 위문편지가 도착하면 동성의 편지보다는 이성의 편지를 더 기다리고, 개발새발 쓴 편지여도 여성의 감수성과, 여성의 필체를 느낌으로 살아있는 숫컷의 본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군인아저씨!’ 하는 첫 머리 아저씨라는 말이 어찌나 어색하면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손이 오글거린다. 당시 위문편지는 각자 하나씩 받았지만 특히 여학생에게서 온 편지는 큰 소리로 내무반에서 읽게 했다. 결국 그 편지가 나만의 편지는 아니었다. 뭐 간혹 펜팔처럼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고, 휴가 나가 만나고 꽤나 실망하고 돌아오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변죽도 없어 그냥 읽고, 낭독하고 그냥 가끔 꺼내보는 정도였다.


 하루는 이성의 편지를 돌아가며 낭독하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야한 표현도 있고, 일면식도 없는 군인아저씨에게 쓰기에는 사뭇 아슬아슬한 내용이었다. 모두들 쓰러질 정도로 작은 애정 표현에도 내무반 바닥을 뒹굴고 환호를 지르고 난리였다. 우리에 가둔 숫컷의 발정과도 같은 날뜀이 극에 달할 무렵 ‘** 중학교 *** 올림’하고 편지는 끝났다. 순간 정적이… 그리고 발정난 숫컷의 날뜀은 분노와 잔뜩 웅크린 공격 직전의 날짐승으로 변했다. 분명 편지의 **중학교는 남자 중학교이고 *** 올림의 이름은 남자 이름이었다. 그 학생의 재치와 기지에 놀아난 우리 내무반 전체의 주적은 그 학생이 되었다.


 한 때의 추억이지만 위문편지는 그렇게 단조로운 군 생활에 촉촉한 윤활유 같았다. 그런데 이제 그 위문편지의 감정을 느끼기에 쉽지 않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부모가 쓴다. 학생들이 보내는 군인아저씨께 라는 위문편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라고 한다. 군대보낸 아들의 모습이 부모에게는 아직도 어린 아이다. 군인아저씨라는 표현은 택도 없다. <더 캠프> 카페에는 아들들의 잘 있는지 사진도 올라온다. 많이 연출된 사진이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아들에게 아저씨라는 표현은 과하다. 그냥 아빠가 아들에게 쓰는 아빠의 잔소리 편지 그것이 더 어울릴 듯 오늘 아침 편지도 결국 잔소리 몇 마디가 들어가고 말았다.


 30년이 지나고 나면 아들도 이 위문편지 생각에 피식하고 웃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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