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밑줄긋기
입에서 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칼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혈기는 넘쳤지만, 지혜롭지 못했던 20대 철부지 교사 시절,
학교에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그래도 젊은 선생님이니 자신과 대화가 잘 통할 것이라 생각하여 나를 찾아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공부하는 것도 학교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도 가정에서 부모님과 지내는 것 모든 것이 다 힘들다며 한참동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을 듣다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인간은 누구나 다 힘들어,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니?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고, 다 힘들단다. 그래서 삶은 고통이라고 하잖아."라는 말이 튀어나갔다.
아이는 내말을 듣고 뜻모를 표정을 남겼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그 당시에는 내가 학생에게 건넨 말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했다.
너도 힘든 만큼, 나도 힘들다는 어쭙잖은 공감의 말이었다.
힘들어하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며칠이 지났다. 나에게 한참동안 넋두리하던 그 학생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등교하지 않은 날들이 하루 이틀 이어지더니 그 아이가 상담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당시 내가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어주었더라면 아니면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공감해 주었더라면 그 학생은 달라졌을까?
주역의 이괘를 읽으며, 유독 그날 일이 많이 생각나고 그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역 이(頤) 괘 대상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君子以愼語 節飮食"
(군자이신어 절음식)
'군자는 말을 삼가고 음식을 조절한다.'
군자는 유교의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군자는 즉 이상적인 바람직한 인간은 말을 조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 날이 있다.
그냥 힘든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이렇게 살바엔 죽어버리고 싶은 날.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듣고 싶은 날.
죽을만큼 힘들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이때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삶은 누구에게나 다 힘든 고통이니, 받아들이고 살아!"라고 한다면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삶의 끈을 이어갈 수 있을까?
내가 던진 한마디의 말이 상대방에게 칼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칼날은 그를 죽게 할 수도 있다.
오늘 하루, 화(火)의 문을 잠시 닫아보는 건 어떨까?